일상/추억의 그림자

아직도 농촌의 인심은 후하네요

렌즈로 보는 세상 2011. 10. 8. 16:34

아직도 농촌의 인심은 후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 날이네요.

 

전국의 아지매나 아재들이 밤 줍기로 바쁜 지금

안동에 내려와있다보니 웃골농장에 밤 주으러 가는 것도 어렵고. .. ...

해서 이 아지매도 밤 주으러 무조건 시골길을 따라나섰네요.

 

밤나무는 산 속에 있을테니 무조건 산이 있는 곳으로 갔네요.

그런데 차에서 바라보는 산에는 눈 씻고 봐도  밤나무가 보이지 않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밤꽃이 필 때 위치를 알아둘껄 하는 후회가 되지만

벌써 때늦은 후회일 뿐이고 ....

 

 

 

차로 한 30분쯤 달려서 제법 깊은 시골동네를 지나다 보니 저 멀리 의젓하고 멋지게 생긴 밤나무가

 밤을 주렁주렁 달고 서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반가움에 나무밑으로 달려가보니 나무밑은 밤송이가 그들먹하네요.

 

떨어진 밤송이를 누가 건드린 흔적도 보이지 않아  이 밤나무는 주인이 없을 거라며

우리는 신이나서 일을 시작했네요.

 

힘들게 높은 산을 오르지않고도 이런 횡재를 할 수 있다니 .....

어제 밤에 좋은 꿈을 꾼 게 분명할 것같아 생각해보아도 잘 생각은 나지 않네요.

 

성게같이 생긴 녀석이 알밤을 한 입 물고 있는 게 얼마나 귀엽던지

증명사진 찍어주고

 

밤을 줍는데 방해가되는 것들도 처지하고 나서

바닥을 내려다봐도 떨어진 싱싱한 밤송이들이 귀엽기만하네요.

 

 

 알도 얼마나 굵고 토실토실한지

오늘 준비한 장바구니 두 개를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아 웃음이 절로 나오네요

 

스틱의 힘을 빌려서도 까고

두발로도 까고 한 참을 정신없이 밤까기가 바쁜데

빵빵 하는 자동차 경적이 올리네요.

울리거나 말거나 우리는 하나라도 더 주울려는 욕심에 고개도 들지 않았네요. 

 

결국에는 차를 우리 차 옆에 세우더니 사람이 밤나무 밑으로 내려오네요.

내가 물었네요.

"아저씨도 밤 주으러 왔어요?"

아저씨 왈

"내가 주인이씨더"

아이고 이 무신 소린고.......?

 

우린 주인 없는 밤나무인줄 알고 밤나무 바로 옆에 차를 세워두고 밤을 줍고 있었네요.

주인 아저씨가 점심 먹으러 집에 왔다가 마당에서 보니 자기 밤나무 옆에 차가 세워져있으니

누가 분명히 밤을 줍겠다 싶어 차를 타고 빨리 왔다네요.

주인의 이야길 듣고 보니

우리가 지금 여기서 '밤을 훔치고 있다.'고 방을 붙이고 밤을 훔치는 격이 되었네요.

 

내가 먼저 물었네요.

"주인 없는 나문 줄 알고 주웄는데 어째니껴?".

아저씨가

"한 번 먹을만치 주웄으면 그냥 가지고 가소.

이 밤이 이렇게 굵어도 토종이라 엄청시리 맛있니더.

길 가에 있어노이 사람들이 익기가 바쁘게 주우갔싸서

안그래도 오늘 털라꼬 하다가 나락 베기 빠빠가주고 못했니더

얼릉 가소. 일하러 가야되니더."

 

그렇게 인상 좋은 아저씨는 우리가 주운 밤을 가지고 가라고 말하면서 맞은편 산을 가르키며

"저어 가보소 그산에 가면 주인이 뭐라하지도 않으이  주우가소,"

 

우린 아저씨의 배려로 

이 가을

넉넉한 시골인심과

맛있는 알밤도 함께 얻는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아저씨네 나무에서 주운밤은 알도 튼실하고 토종밤이라 맛도 너무 좋았다

집에 와서 부어보니 두 되는 될 것 같았다.

 

아저씨가 가르켜준 산에 올라가 주운 밤

알이 좀 작고 벌레 벅은 것도 많았지만 두 시간만에 이정도 수확이면 괜찮지요?

 

어머님 경로당에도 삶아 드리고

올 겨울 제사 상에도 올리고

약밥도 만들어먹고

갈비찜에도 넣어 먹고

겉껍질 벗기고 삶아서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입 심심한 날 간식으로 하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