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진이야기

늙은 어머니를 그리다

렌즈로 보는 세상 2012. 4. 4. 08:34

 

 

 

며칠 전 kbs 저녁 9시 뉴스에 소개되는 전시회의 소식에 가슴이 찡해졌다.

한옥 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가 한설희씨의 <老母>전 때문이다.

그날 뉴스를 본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면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아서

살아계시면 또 그나름대로 애틋한 사랑이 떠올라서였으리라.

그 가슴 뛰게하던 사진을 어제 비가 그치자마자 서둘러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작가 한설희씨가 나와서 설명해주시는 바람에

사진과 더 가까워지는 행운을 얻었다.

 

 

 

 

 

오랜만에 찾은 통의동 한옥 갤러리 류가헌의 실외 전시장은 벽돌담과 함께 여전히 정갈하다.

'류가헌(함께 흐르면서 노래하는 집)'은 이름에 걸맞은 전시로 늘 시선을 모은다.

 

 

 골목을 돌아 들어가니 나무문에는 따스하게 비친 햇살이 좀 전의 궂은 날씨를 잊게한다.

 

 

 

 

69세 할머니가 92세의 노모를 찍은 사진.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개인전을 펼치는 것만해도 대단한데

공영방송에 소개되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사진

그 사진을 찍은 작가의 심정은 어땠을까?

 

 

 

 

2010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이제 마지막 남은 어머니를 어느날 또 갑자기 잃어버리게 될까봐

이제까지 망설여왔던 어머니를 기록하는 사진을 하게 되었다는 작가 한설희씨

 

 

 

 

작가인 딸에게 어머니란

떠나버린 아버지를 한 평생 기다리던 여인,

자식들 뒷바라지로 고생만 하던 어머니의 인생이 어느새 슬며시 흘러가 버리고

1920년 북녘 외딴 작은 섬에서 나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뭍으로 왔으나,

 이제 늙고 병들어 다시 섬처럼 홀로 방안에 갇혀버린 여인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황망해하던 중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늙고 병들어 겨울나무 마냥 앙상하고 쇠잔해진 어머니가 계셨다."

한설희씨는 그 어머니의 남은 날들을, 일상의 여정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사진을 전공하지도 사진가라는 타이틀을 이름 앞에 둔 삶도 아니었지만,

1979년부터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사진이 좋아서 사진을 자신의 일상 중심에 세우려 노력해온 그녀였다.

신도시 판교의 여러 면면을 기록하는 등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해오던 중이었는데,

 홀로 된 어머니를 보살피면서 자신이 하지 않으면 누구도 기록하지 않을

더 절박한 다큐멘터리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작가는 말했다.

“사진에 이해가 없으신 데다 움직이지 않고

좁은 방안에 거의 누워계셔서 다른 모습을 찍을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하지만, 어머니와 정서적인 공감을 이루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정서적 공감을 이룬 시간들이 고스란히 사진으로 쌓였고,

그 사진들은 우리나라 최초로 사진가들이 재정한 상인

 <온빛사진상>의 심사를 맡은 여러 사진가들과 참가자들과도 깊은 공감을 이루었다.

한설희의 <노모(老母)>가 제1회 온빛사진상 초대 수상작이 된 것이다

 

 

 

 

온빛사진상 수상과 함께 이름 앞에 사진가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워진 한설희.

그녀의 첫 전시이자 온빛사진상 초대 수상작

<노모(老母)>가 오는 3월 20일부터 4월 8일까지 류가헌에서 전시된다. ‘

따뜻한 빛’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는 온빛처럼, 따스한 공감이 전시장에 가득할 것이다.

 

 

 

 

전시장에는 젊은이들 보다는 나이든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늙은 어머니의 노래는 나이든 사람들에게 더 많은 울림을 주는 모양이다.

 

 

 

 

오래된 지붕과 전기줄이 노모만큼 늙어버린 통의동 골목 한옥 갤러리 류가헌

 

 

 

 

햇살 쏟아지는 이 봄에 친구들과 함께 들려

어머니도 그리고 차도 한 잔 마시고

돌아올 땐 사진집도 한 권 사서 돌아올 수 있는 곳.

그곳으로 봄 여행을 다녀오는 날은

어머니를 추억할 수 있어 마음이 따뜻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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