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안동 아지매의 서울 구경

윤동주시인의 언덕

렌즈로 보는 세상 2012. 5. 15. 11:55

 

감수성 예민하던 여고시절

윤동주시인의 주옥같은 시에 심취하지 않은 소녀가 있었을까요?

저도 그의 '序詩'나 '별헤는 밤'을 읽으며 그를 사랑했지요.

 

얼마전에 창의문에서 오르려던 성곽길을

신분증이 없어서 오르지 못하고

반대편에 윤동주시인의 언덕 이 있다는 이야길 듣고

갑자기 오르게 된 시인의 언덕

그곳에서 시인의 자취를 흠뻑 느끼고 왔습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는 2009년 7월 11일

윤동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인왕산 자락 청운공원(부암동)에 [시인의 언덕]을 조성하고
이곳에 <序詩> <슬픈 族屬>을 새긴 시비(詩碑)룰 건립하였다.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종로구 누상동에 있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 하숙하면서 <서시> <별 헤는 밤> 등 대표작들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윤동주 시인은 인사동과 광화문, 인왕산 자락을 거닐며

시상을 구상했을 것으로 보인다.

 

시인의 언덕을 오르는 길 표지판의 끝에는 序詩亭이 보인다.

 

 

 

 

序詩에서 바라본 시인의 언덕

 

 

언덕의 정상에 詩碑와 '序詩'시비가 세워져있다

 

윤동주 시인의 생애(1917.121.30-1944.1.16)]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천부적 시인,

일제식민지배하에서 요절한 통한의 짤막한 생애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서 출생.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 숭실중학교 편입,
광명중학교 졸업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941년 12월 27일
연희전문학교 졸업. -틈틈이 쓴 시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려다 이루지 못했다.

1943년 7월 14일,
귀향 바로 전 사상범으로 일경에 체포돼 교토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
-이듬해 교토지방재판소서 독립운동죄목으로 2년형언도로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4년 1월 16일

후쿠오카형무소서 옥사. -그 해 3월 간도 용정에 유해를 안장,
그의 죽음은 일제말기 생체실험에 의함이란 의문이 수차례 제기되었고,
옥살이중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아왔다고 전해진다.

이 언덕에서 시인은 인왕산과 서울의 모습을 바라보며 시상에 잠겼을 것이다.

 

별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차 있읍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하나에 추억과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하나에 동경과
별하나에 시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짬,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읍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읍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시비 너머로 남산과 서울시의 모습이 보인다.

그시절 초가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나라 잃은조국의 수도가

이렇게 바뀔줄 시인은 상상이나 했을까?

 

 

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입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의 길을 따라 성곽쪽으로 올라본다

그시절에도 이런 길이 있었을까?

물론 더 좁은 길일지라도.....

이런 길이 있었다면 시인의 발걸음은 더 더디고 생각은 더 깊어졌을 것 같다

 

 

'별이 아스라히 멀듯이'란 글이 새겨진 목책을 지나 다시 내려오는 길

서시정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그들은 이 서시정의 의미를 알고 있으리라.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나온 엄마들은 그 아이들이 알지못하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기를 원했던 윤동주라는 시인이 있었다.'고

 

 

 

벚꽃 지고 영산홍 흐드러지게 핀 날에 찾았던 시인의 언덕

날 맑고 구름 둥둥 떠다녀 더 가슴 아팠던 날.

 

이런 좋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떠난 시인

주옥같은 시를 모아 시집도 내지 못하고 떠난 시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해 돌아가셨을지도 모르는 시인

그 통한의 천재시인을

이 언덕이 있음으로 다시 추억하며

힘들고 험한 세상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가는 공간이길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