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추억의 그림자

김장의 마무리를 짠지로 하다.

렌즈로 보는 세상 2012. 12. 7. 13:22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기 싫은 걸 억지로 일어났습니다.

나이 드니 잠이 줄어들어 어느날이나 여섯 시간만 자면 눈이 떠지는데

오늘은 예외로 8시간이나 잤는데도 일어나는 게 귀찮았습니다.

고향에 내려와서 김장 준비를 하여 김장을 하고 났더니 그런 것 같습니다.

예년 같으면 어머님이 거들어주셔서 조금 수월했는데

올해는 어머님이 대상포진으로 편찮으셔서 온전히 저혼자 했더니 더 피로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김장을 무사히 마쳤으니

이제 메주만 만들어 달면 겨울채비는 마무리 하니 한 숨 돌릴 수 있어 좋습니다.

 

 

 

 

 

 

 

 

 

 

올 해 배추와 양념이 비싸다고 하는데

 둘째 시누이 사장어른께서 직접 기른 배추 40포기와 무, 고추가루, 마늘을 보내주셨습니다.

매년 배추외 양념을 보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지요.

여름날 땡볕 아래서 일하시느라 애쓰신 걸 생각하면

앉아서 받아먹는 게 죄송하여 그만 두시라고 해도

농사지은 쌀까지 한 자루를 같이 싣고 오시는 어르신들입니다.

 

 

 

 

 

 

 

 

 

사장어른들이  보내주신 김장재료로 일년 먹을 김치를 해서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시누이들과 나눠 먹는다고 40포기 모두를 했습니다.

속이 찬 배추들이라 우리 김치통 8개를 채우고

혼자 사시는 종시숙님도 한 통 드릴 수 있어 마음이 편안합니다.

6촌 동서간이지만 친동서 못지않게 지내던 동서가 일찍 가시고 아주버님 혼자 사시는데

평소에 반찬은 못해드리더라도 매년 김장은 한 통씩 해드린다고 마음 먹고 하지요.

배추김치, 파김치, 무말랭이, 물김치를 모두 마치고 마지막으로 추억의 김치로  마무리합니다.

 

 

 

올해 우리집 김치 중에 추억의 김치는 바로 어릴 적 퍼드럭배추로 담았던 짠지입니다.

 

 

 

 

 

어머님은 텃밭에 늦게 배추를 심었습니다.

남편이 씨가 좋으면 무조건 배추가 좋다는 생각으로 한 봉에 만원을 주고 씨를 사서 심었지만

배추는 늦게 심은데다 가뭄으로 인해 영 자라지 않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키워볼까 싶어 알도 차지 않는 걸 억지로 짚으로 배추를 묶어서

마지막까지 추위를 막는다고 저녁이면 비닐로 덮어 씌워가며 키웠지만

다 자란 게 요런 모양입니다.

 

 

 

 

이 작은 배추를 그냥 두고 먹자니 양이 너무 많아서 옛날 어릴 적 어매가 만들어서

우리 구남매가 먹고 자랐던 짠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짠지는

 어릴 적 배추든 양념이든 너무나 귀하던 시절에 조금 먹어서 반찬이 되게 하려고 짜게 만들었던 김치입니다.

그시절을 생각해서 진한 양념이 아닌 남은 양념을 슬쩍 발라 작은 항아리에 담았습니다.

 

 

 

 

 

이 짠 짠지를 금방 먹을 수는 없겠다 싶어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내년 초여름에나 꺼내 먹어볼까 싶어 남편이 마당에 있는 화단에 구덩이를 팠습니다.

갑짜기 추워진 날씨에 땅이 살짝 얼긴 했지만 깊은 곳까지 얼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바닥에 뭔가를 깔고 항아리를 묻어야할 것 같아 비닐을 한 장 깔고

비닐로 밀봉한 항아리를 묻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뚜껑을 덮고 흙을 덮습니다.

이렇게 항아리에서 겨울을 나고 해동이 된다고 해도 이 항아리는 이곳에 묻혀서

몸안에 있는 김치를  푹 삭일 것입니다.

 

그렇게 푹 삭힌 김치는 내년 초여름 우리집 식탁에서 쭉쭉 찢어져 밥 숟가락 위에 걸쳐져

옛날 이야기를 하며 먹는 김치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