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안동 아지매의 서울 구경

그날의 총탄 흔적까지 그대로 재현된 경교장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5. 20. 07:47

 

 

 

사적 465호인  경교장,

 김구선생의 마지막 거처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쓰였던 그곳이 64년만에

유리창에 난 총탄의 흔적까지 그대로 재현되었다니 이 안동아지매 구경하고 싶어서 어제 다녀왔습니다.

 

   

 

탕! 탕! 탕! 하는 그날의 총소리가 들릴 것 같은 흔적이 그대로 재현 된 경교장.

1949년 6월 26일  오후

 저 의자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71세의 김구선생,

범인 '안두희'의 총탄에 흰 저고리에 피를 쏟으며 쓰러졌을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은 아득한 풍경이 있어 

그곳의 복원에 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1945년 11월 중국에서 돌아온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마지막 청사로 사용하던 곳,

이런저런 세월의 부대낌으로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3년의 복원공사를 끝내고 드디어 지난 3월 2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강북삼성병원 부근에서 안내판을 보고 찾아들어갔지만 쉽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 관내에 이런 역사적인 건물이 있다는 걸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상 2층(재현전시실), 지하 1층(임시정부가 걸어온 길과 김구선생과 임시정부 요인들의 유물전시) 건물인 경교장,

1938년 금광업자 최창학의 저택으로 건립되었다가 1945년 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하면서

임시정부 청사 및 김구선생등 임시정무 요인들의 숙소로 쓰이던 건물로

1949년 김구선생이 서거하자 중화임민공화국 대사 관저와

월남대사관으로 사용되기도 하다가 최근에는 강북삼성병원 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의 쓰러짐이 건물의 역사도 이렇게 다양하게 만들었다.'

싶은 생각에 건물을 보는 마음도 짠합니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경교장.

1990년대부터  경교장 문화재지정을 검토하기 시작해서

드디어 2005년 6월 국가 사적 제46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10년 7월 이후,

 3년간의 복원공사를 거쳐서 3월 2일에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돌아보게 하기 위해 우리곁으로 멀끔한 얼굴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김구선생의 간략한 일대기도 볼 수 있습니다.

젊어서부터 나보다 남을 먼저

우리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했던 김구선생의 모습입니다.

 

 

 

언제 보아도 가슴 아프게 하는 김구선생이 생을 마감할 때 입었던 저고리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저 혈흔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완벽한 증거가  없는 베일에 가려진 선생 암살당시의 역사에 더 가슴 아플 것입니다.

 

 

 

 

붓글씨를 즐겨쓰셨던 선생의 친필 글씨 '신기독'.

'혼자 있을 때도 삼가라'

그 삼가할 바가 사특함이 아닐런지요?

 

 

 

 경교장에는 이외에도 백범 일지의 초간본과 신탁통치 반대 전단지,

 북한 내 민족진영 비밀조직원들이 북한 내 동향을 보고 하고 김구와 이승만에게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탄원하는 내용을 속옷에 빽빽하게 담은 밀서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1층에는 국무위원회 등이 열렸던 응접실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따뜻한 저녁식사를 했던 귀빈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곳의 주인들은 가고 없지만

그곳을 지키던 가구들도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이 응접실은 김구선생 서거 후에 빈소로 사용되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층에 있는 임시정부요인들 숙소.

'양식건물에 방이 이런 일본식 다다미방이었을까?'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그렇게 부담스럽지만은 않습니다.

 

 

 

김구선생의 침실너머로 선생이 쓰시던 거실이 보이고 거실 너머로 총탄을 맞기 직전에 앉아계시던 의자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 의자 뒤에 밝게 보이는 창에 안두희가 잘못 쏜 총탄의 흔적이 남아있는 창입니다.

'만약에 그 당시에 집권자들이 선생의 민족사랑을 대단하게 생각했다면 지금의 이런 깔끔하게 정돈 된 모습이 아니라

현장이 그대로 살아있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더 큰 교훈을 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던 공간입니다.

 

 

 

김구선생의 거실

생전에 공무를 보거나 접견장소로 사용하던 공간이기도 했지만 

서거하신 후에 처음 시신이 안치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2층에 마련된 오토마타실에서는

임시정부 국무회의 모습의 미니어처 뒤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당시 인물들의 실물사진을 볼 수 있고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라

경교장을 나오기 전에 들려서 다시 한번 그곳의 의미를 되새기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경교장이 예전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게 말금하게 복원되었지만

이 벽면과 이층에 있는 벽난로는 그대로 보존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멀리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 기념사진이 보이는 곳에 새겨진 김구선생의

 - <나의소원>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중에서 -

따온 글을 보면은 큰일을 하시다가 비운에 가셨지만 그 꿈은 참 소박했지만 한없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마음이면 이 새상은 참으로 평화로울 텐데 말입니다.

 

64년 만에 우리들 품으로 돌아 온 대한민국의 혼이 살아숨쉬는 경교장

 우리의 아픈 과거사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곳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교육의 장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