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좋은 글

안동의 신사임당 정부인 안동장씨 계향 편지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7. 2. 08:25


 

이문열의 소설 <선택>의 실제 모델이자

그의 직계 13대 할머니가

정부인 안동장씨(貞夫人 安東張氏.1598~1680)다.

정부인 안동장씨는 조선시대 현모양처의 표본으로 추앙받는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년~1551년)과 견줄만 한 인물이다.

 그녀의 한시(漢詩) 9편은 조선중엽 천재적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년~1589년)과 쌍벽을 이룰 정도다.

그녀의 덕행과 예술가로서의 자질, 부모를 공경하는 효심,

지아비를 섬기는 현부인(賢夫人)의모습,

자식을 훈육하는 훈도(訓道)등은

오늘날 위대한 어머니 상으로 추앙받을 만 하다.

정부인 안동장씨의 본명은 장계향(張桂香)이다.

 

<음식디미방>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요리서를 낸

요리연구가이기도 한 정부인 안동장씨,

비 오는 날 아침 그녀의 마음을 담은 시같은 편지 몇 편을 올립니다.

 

 

 

 

 

 

 

桂香 편지 1

 

내고향 학가산 봄 편지에는

매화분에 물주라시던 그 어른 말씀이

물굽이마다 적혀 있었다.

 

성인을 닮으려들면 언젠가 그리 되는가

그 믿음 그 사랑으로 흐르는 낙동강이

보고접다 보고접다 다녀가라 하더이다.

 

 

 

桂香 편지 3

 

낙동강은 칠백의 길에서도 쉬어가잔 말 없듯이

새는 울어도 눈물없고 소리없이 피는 꽃들은

보고 듣는 기쁨으로 마르지 않는 샘이 되고 싶었다.

 

여자로 태어나 사는 내 안에 강이 흘렀다.

 

그 강물로 적어 부치지 못한 편지들은

슬픈 것의 눈물이 되고, 기쁜 것의 소리가 되었다.

안으로 깊어져 목마름 적셔주는 눈물이고 싶었다.

 

 

 

桂香 편지  4

 

봄날엔 배고픈 아이들이

민들레 꽃씨처럼 떠다니어 울고

 

여름이면 병든이들 장맛비속에서

절룩절룩 모기떼처럼 울었다.

 

가을날엔 버려진이들이 세상 원망하며

철새따라 울음울고

 

겨울엔 피난인들 눈자국 빈들판 헤매며

바람소리로 울었다.

 

그리고 천민들은 사시사철

자근자근 짓밟히며 피울음 울고

 

난 배운 것이 가진 것이 부끄럽고

두렵고 아파서 따라 울었다.

 

다만 그 세상 위에 도토리묵 한 그릇 마련해두고

따라 울었다.

 

한 백년 조선땅은 울음으로 역사를 썼다.

 

 

 

 

 

 

 

 

桂香 편지  5

 

남 업신여기는 것은 다만

사랑이 모자라서 생긴 마음의 모진병

사랑은 낮은 곳에 산다네

사람이라서 외롭고 가난한 것이어니

사람이니까 나누고 돌봐주는 것

혼자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네

백성이 있어 임금이 임금답고

가난한 이가 있어 부자도 되나니

살아있는 것은 모두가 동무라네

 

 

桂香 편지   6

 

내 안에서 빛났던 여든 두 해는

조선의 마음으로 짠 고운 안동포

性理의 낙동강을 씨줄로 세우고

그 어른 西厓 우뢰같은 침묵 날줄이 된 안동포였다

 

내 몸은 세상을 의지했고

마음은 이웃에 업혀서 행복했나니

여자의 눈으로는 꽃을 보았지만

어머니 눈을 얻어 하늘을 보았다

 

고사리는 꺾이면서 천년을 누리고

쑥은 뜯기면서 천년을 살데

세상을 딛고, 이웃을 안고

쑥처럼 고사리처럼 천년을 살고 싶었다.

 

 

 

 

 

 

 

桂香 편지   7

 

山에 가면 그 山 높이

물에 가면 그 물 깊이로

목마른 그리운 바람

흔들어 내는 눈물

목소리 山에 두고

발자욱 강물에 풀며

허공 태운 대지에

꽃씨를 심는 그대여

 

 

 

桂香 편지   8

 

사람은 밥으로 하늘을 담는다

밥안에 하늘이 살고

하늘 안에 사람이 산다

 

밥에는 맛의 우주가 산다

혼자 먹으면 독이지만

함께 먹으면 약이다

 

맛을 아는 것은 생명을 잉태하는 것

맛을 아는 것은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사람과 하늘이 맛안에 사느니


정부인 안동장씨와 음식디미방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dimibang.yy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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