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좋은 글

자작나무 길에서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7. 22. 07:40

 

강원도 평창 휘닉스파크 골프장으로 가는 길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길이 시선을 끕니다.

비 오락가락하는 날이라 길 가의 잔디도 나뭇잎들도 초록이 짙은데

자작나무 몸통만 흰색을 자랑합니다.

노랗게 물든 단풍 뚝뚝 떨어지는 가을 자작나무도 아름답고,

흰 살 드러내고 빛 받은 겨울의 자작나무도 아름답지만 

녹색 싱그러운 여름의 자작나무도 청정해서 좋습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여름 자작나무와 함께 자작나무에 대한 시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시 두 편을 올립니다.

 

 

 

 

 

 

 

 

 

 

자작나무

                 - 도종환

 

자작나무처럼 나도 추운 데서 자랐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맑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꿈의 키만 높게 키웠다

내가 자라던 곳에는 어려서부터 바람이 차게 불고

나이 들어서도 눈보라 심했다

그러나 눈보라 북서풍이 아니었다면

곧고 맑은 나무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몸짓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외롭고 깊은 곳에 살면서도

혼자 있을 때보다 숲이 되어 있을 때

더 아름다운 나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자작나무 내 인생

                                      - 정끝별

 

속 깊은 기침을 오래하더니

무엇이 터졌을까

명치끝에 누르스름한 멍이 배어 나왔다

 

길가에 벌(罰)처럼 선 자작나무

저 속에는 무엇이 터졌길래

저리 흰 빛이 배어 나오는 걸까

잎과 꽃 세상 모든 색들 다 버리고

해 달 별 세상 모든 빛들 제 속에 묻어놓고

뼈만 솟은 저 서릿몸

신경줄까지 드러낸 저 헝큰 마음

언 땅에 비껴 깔리는 그림자 소슬히 세워가며

제 멍을 완성해 가는 겨울 자작나무

 

숯덩이가 된 폐가 하나 품고 있다

까치 한 마리 오래오래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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