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추억의 그림자

안하던 짓을 하니 힘도 들지만 즐겁기도 하네요.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10. 17. 06:48

 

지난 주말 형부네 과수원에 배를 따러갔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과수원 옆에 있는 산자락에 도토리가 떨어진 것이 보입니다.

탱글탱글하니 귀여워 그냥 두고 올 수가 없어 트렁크에서 비닐봉지를 꺼내어 하나 둘 주워 담기 시작했네요.

한 시간을 주웠을까 싶은데 3Kg은 족히 되는 양입니다.

 

 

 

줍는 맛에 주워오긴 했습니다만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합니다.

친한 친구가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물어보았네요.

친구말이 일단 물에 담궜다가 껍질을 까라고 하는데 망치로 두드려보니 도토리보다 너무 크기가 커서 불편해서 펜치로 껍질을 두드려 까보지만 손만 때리고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집 주변에 있는 방앗간에 가서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네요.

주인도 역시 집에서 껍질을 까서 가지고 오면 갈아주겠다네요.

 

 

 

 

방앗간 주인이 까는 기계를 사서 까면 쉽게 깔 수 있다는 말에 남편이 얼른 시장에 가서 기계를 사왔네요.

그렇게 기계로 까니 좀 쉽게 깔 수 있었지만 워낙 잔잔한 것이 숫자가 많다보니 우리 내외 하루 종일 깠습니다.

남편은 기계로 눌러서 껍질을 부수고 저는 부서진 껍질을 벗겼네요.

모처럼 하루종일 상부상조하면서 즐겁게 일했네요.

물론 허리는 무너지게 아팠지만요.

 

껍질을 벗겨놓고 친구에게 묵 만드는 법을 배워서 일단 조금만 만들어보기로 했네요.

 

 

껍질을 벗긴 도토리를 꼬박 하루를 물에 불렸네요.

 물론 물이 밤색으로 진해지면 물을 갈아가면서 말이지요.

그렇게 물이 좀 맑아졌을 때 일부를 집에 있는 믹서기로 물과 혼합해서 갈았네요.

그것도 적당한 양을 조절할 줄 몰라서 딱딱한 걸 너무 많이 넣어 돌려서 모터가 달아 잠시 멈춰서기도 했지만 서너 번을 돌려서 갈았습니다.

그리고는 걸러낼 주머니도 없어서 급하게 시장에 가서 사온 면주머니에 넣고 조물락 조물락 주물러서 녹말을 걸러냈네요.

 

 

 

걸러낸 액은 이렇게 진한 갈색을 띠우고 있네요.

이렇게 진한 색깔일 때 묵을 쑤면 묵이 떫은맛이 너무 강하다니

녹말이 충분히 가라앉을 때까지 서너 시간을 기다렸다가 물을 갈기를 두 번 더 하고 물이 맑아졌다 싶을 때 윗물을 따루고 묵을 쒔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하는 것이라 물의 양을 조절할 줄 몰라서 끓여도 끓여도 끈끈해지지가 않더라고요.

한 시간 쯤을 끓이다가 되었다 싶어 스텐 양푼이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놓고 삼십 분 쯤이 지나도 굳는 모양이 영 흐물거리는 것이 채를 쳐서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아 다시 냄비에  넣어 끓였네요.

그런데 어떤 정도까지 끓여야되는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요.

옛날에 어매가 메밀묵을 쑬 때에는 나무 주걱을 세웠을 때 넘어지지 않으면 다 되었다는 말은 생각은 나는데 나무 주걱도 없이 스텐숟가락으로 젓고 있으니 통 알 수 없더라고요.

 

 

 

 

어쨌거나 20분쯤을 더 끓여서 드디어 묵이 완성되었네요.

윗부분이 너무 딱딱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적당하게 굳었을 때 물을 살짝 부어놓으라는 친구 말을 들었더니 요렇게 쭈글쭈글해졌네요.

지금 보기에는 괜찮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좀 무른 것 같기도 하니

일단 완전히 식은 후에 먹어봐야 그 맛은 알 것 같네요.

 

산에 지천으로 떨어져있는 도토리가 아까워 주워온 것이 고생의 시작이긴 했습니다만

우리 내외 같이 힘 모아 만드는 맛은 있었던 도토리묵 만들기였습니다.

아직 까서 물에 담궈놓은 도토리가 더 많은데 다음에는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네요.

다음에는 방앗간에 가서 갈아다가 제대로 만들어 도토리묵 좋아하는 딸네도 주고 시누이도 줘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