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추억의 그림자

북촌 한옥에서 벨기에 사진가 마크 드 프라이에씨와의 만남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10. 30. 06:41

 

얼마 전 벨기에의 사진가 마크 드 프라이에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눌한 우리말로

"나 벨기에 사람입니다."

라는 말을 들으면서 얼른 그가 2008년 마지막으로 만난 벨기에 사진가 마크 드 프라이에씨란 걸 알았지요.

반갑다는 인사는 했지만 다음으로 이어지는 영어에 이 촌 아지매 어리벙벙해져서 다음 대화는 이어지질 못했답니다.

생애 최초로 영어를 열심히 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 순간이었지요.

그렇게 시작된 그와의 대화의 내용은(하긴 대화가 아니고 그의 일방적이 말) 대충

"한국에 왔고, 안동에 왔는데 당신을 만나고 싶다."

고 하기에

나는

"나는 서울에 있다"

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고 ....

그는 계속해서

"그럼 내가 23일에 서울에 올라가니  만나자. 시간이 되느냐? 남편은 잘 있느냐?"

는 내용인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줄도 모르고 어정쩡하게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니 이런저런 단어도 생각나는데.....

그렇게 바보스러운 대화를 어떻게 풀어야할 지 몰라서 사위에게 응원을 부탁했고

사위가 전화를 주고받고 해서 지난 주말 딸네 가족과 함께 북촌 한옥에서 그를 만났다.

 

 

 

 

 

 

마크 드 프라이에(63)는 벨기에의 사진가로 1988년부터 한국을 찍어온 사진가다.

그의 한국을 찍은 작품은 대영박물관과 스미소니언 같은 세계 유명 박물관에 소장 될 만큼 벨기에의 자랑인 사진가다

그런 그가 2007년 내 전시회를 다녀가면서 인연은 시작되었다.

한국 사상의 근간은 유교사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 그래서 그는 유교사상의 본고장인 안동을 수없이 드나들었단다.

그런 그는 내 종갓집 어른들의 사진을 무척이나 높게 평가했다.

물론 화이버 베이스에 암실작업을 한 내 흑백프린트도 아주 좋아했다.

그렇게 시작 된 그와는 인연은 2008년 그가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서 <건축도자전 Old>에 한국고건축 사진을 전시하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해 전시가 끝나고 그가 안동을 방문하고 우린 함께 식사를 하고 사진이야기를 했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그렇게 헤어지고 난 후에 그에게서 연락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이번에 연락이 온 것이다.

우리는 인사동이나 삼청동에서 점심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자니 그는 자기가 묵고 있는 북촌한옥으로 오란다.

사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자면 그곳이 편안하고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백화점에 들러  우리특산품 차와 빵을 사가지고 그와 만나기로한 안국역 2번 출구로 갔다.

그는 아내가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혼자서 마중을 나온다고 하기에 우린 은근히 간단한 점심상을 기대하며 갔는데 그게 아니다.

그들은 정말 간단하게 배 한 접시와 차만 준비했다.

우리의 정서와는 차이가 많다.

우리는 손님이 오면 밥 대접이 진정한 대접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점심은 차나 과일 맥주면 끝이라고 했다.

우리가 사가지고 간 빵이 아니었다면 점심을 굶었을 뻔했네요.

하긴 친구의 집에 머물고 있는데 많은 걸 기대한 우리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서까래와 오래된 민속품들이 아름다운 한옥에서 오랜만에 차를 앞에 놓고 마주한 그들 부부는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하나도 변하지 않은 인상 좋은 이웃아저씨와 아줌마 같은 모습  그대로이다.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늙지 않는데 그도 마찬가지이다.

30년이 가까운 시간동안 한국을 드나들면서 사진을 찍은 프라이에씨의 한국사랑은 이제 끝이날 것 같단다.

한국이 너무 서구화가 많이 되어서 이젠 더이상 찍을 거리도 없고 찍고 싶은 생각도 없기 때문이란다.

 

 

 

 

 

 

 

 

한국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아들과 딸을 한국에서 입양했단다.

우리 외손녀가 자기의 손녀와 닮았다면서 친할머니처럼 놀아주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언제 기회가 되면 브뤼셀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자기 집에 놀러오라고는 하지만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일 것 같고

다시 만나기는 힘들 것 같아 섭섭하다.

한국에서 찍은 수십만 컷에 달하는 이미지로만 이제 한국을 추억하겠다니 말릴 수도 없지만

우리가 이사하는 곳에서  하룻밤 묵어갔으면 좋겠다는 말로 섭섭함을 달랜다.

 

 

 

 

 

 

사위의 통역으로 그간의 근황과 사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로 한참을 보낸 후 프라이에 씨가 말한다.

내 사진을 소장하고 싶다고.

그러나 나는 선뜻 허락하지 못했다.

 사진을 찍을 때 모델을 해주신 분들과 한 약속 때문이다.

전시나 사진집, 매거진에만 사진을 쓰겠다고 서명을 받았거든요.

확실한 답을 하지 못한 채 핫셀 블라드로 찍은 그의 흑백사진 선물을 받고 나오는 게 개운찮은 날이었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서 <건축도자전 Old>에 전시 된 그의 사진

 

 

"오늘 한국에서는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타는 마크 드 프라이에씨,

이사를 하고 다시 "맥을 잇는 사람들" 작업을 할 때 그분들께 프라이에씨의 이야기를 하면서 허락을 받은 후에 사진을 보낼 수 있도록 해볼게요.

늘 건강하시고 이제 중국에서의 사진작업도 훌륭하게 수행하시길 빕니다."

 

 

 

 

 

좋은 인연이 이런 행운까지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