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공연

뮤지컬 <구텐버그>ㅡ꿈을 꾸고 그것을 위해 노력할 때 더 아름답다.

렌즈로 보는 세상 2014. 9. 25. 06:14

 

 

전원생활의 가을아침은 거의 6시부터 바깥 활동을 하는데

비가 내려 모처럼 한가하다.

아직은 조금 푸른 비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눈과 귀, 마음이 호강한 서울나들이를 생각한다.

지난 주말에 친구 부부와 함께 다녀온 뮤지컬 <구텐버그>다.

 

 

 

친구가

"뮤지컬 <구텐버그> 입장권을 사뒀으니

너희 부부 함께 가자."

는 이야기를 듣고

잠깐 들어가 본 싸이트 <구텐버그>,

두 사람이 20개가 넘는 캐릭터를 소화한다기에

'좀 따분하겠다.'

싶어 하면서 친구 얼굴이나 본다는 생각으로 대학로 '수현재씨어터'를 찾았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 나온 우린 따뜻한 차를 마시며

'정말 오길 잘했다.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어.'

라며 공연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구텐버그>는 버드와 더그라는 두 신인 뮤지컬 작곡가와 작가의

브로드웨이 진출을 향한 이야기를 그린 극중극 구조의 2인극이다.

버드와 더그는 활자 인쇄술의 혁명가 '구텐버그'를 소재로

자신들이 쓴 뮤지컬 <구텐버그>를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줄 프로듀서를 찾기 위해

자신들이 직접 노래하고 연기하며 작품을 선보인다.

 

 

 

 

 <구텐버그>는 극을 이끌어가는 두 명의 주인공이 한 명의 피아노 연주자와 함께

20개가 넘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극의 모든 등장인물과 플롯을 책임진다.

작품의 재미있는 특징은 많은 등장인물을 배역의 이름이 적힌 모자로 구별한다.

모자를 통한 역할 교체는 타이밍이 조금만 엇갈려도 혼선이 올 법한데

그 타이밍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들의 능력이 놀랍다.

단출한 세트와 소품만으로 배우들의 힘이 극을 이끌어가지만 전혀 지루하지도 심심하지도 않다.

한 노래 안에서도 한 소절 단위로 모자를 바꿔 써 가며

표정과 목소리를 변화 시키며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마치 신들린 듯하다.

이런 배우들의 에너지가 객석까지 뜨겁게 달군다.

 

 

 

 

우리가 본 공연은 허규(버드)와 정원영(더그)이 주인공이다.

두 배우의 연기력과 가력은 대단하다.

 두 배우들은 뮤지컬 지망생에서 출발해 작품 속 주인공 구텐버그,

 나이 들고 사악한 수도사, 바보 같지만 순수한 젊은 수도사,

곱고 새침하지만 가녀린 여주인공, 매사에 신경질적인 인종차별주의 소녀,

열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딸까지

나이와 성별을 초월해 모든 역활을 분주하게 소화한다.

역시 뮤지컬 배우들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특히 허규의 약한 듯한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고음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뮤지컬 <구텐버그>는 즉흥성이 돋보인다.

그 즉흥성은 애드립인 듯 하지만 정교하게 설계된 애드립이다.

때로 그들이 말을 버벅거리도 하고 과장하기도 하는 것이 매끄럽지 못해서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게 한다.

이런 즉흥성이 관객들을 극에 더 집중하게 한다.

 

 

 

 

뮤지컬 <구텐버그>는 액자식 구조라 더 재미있다.

뮤지컬은 버드와 더그가 보여주는 극중 뮤지컬 <구텐버그>의 스토리를 풀어가는데 주력하다

중간중간 버드와 더그의 개인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지금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지만,

브로드웨이를 향한 꿈은 버리지 않았던 이 청년들의 삶은

어느새 인쇄기를 향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구텐버그의 삶과 겹쳐진다.

사악한 수도사의 계략과 세상의 오해 같은 것들이 구텐버그의 꿈을 위협했듯, 생

계의 위협과 세상의 괄시 속에서 버드와 더그의 꿈 또한 이루지 못한 채 지금까지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공연이 제작자들의 선택을 받을지 여부를 떠나,

자신들이 대사를 쓰고 곡을 지은 작품이 누군가에게 선보여졌다는 사실 자체에 커다란 행복감을 느낀다.

 

 

 

 

 

그것이 성공할지 말지를 떠나서 꿈꾸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이어지던 웃음의 끝에 예상치 못한 감동을 준다.

그리곤 꿈의 가치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이뤄지는 꿈만이 가치가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비록 당장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한,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내 삶이 더 풍요로워 지는 한,

꿈은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말하는 세상에서,

당장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꿈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뮤지컬 <구텐버그>는 우리의 하루하루를 가슴 뛰게 한다면

꿈은 무엇이든 소중하다는 것을

배우들의 열정 가득한 연기에 담아 보여준다.

뮤지컬 <구텐버그>는 12월 7일까지 이어진다.

이제 가을도 깊어지고 곧 겨울로 접어들 것이다.

이런 스산해지는 계절에 훈훈한 뮤지컬 관람으로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