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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출해서 더욱 고즈넉한 위대한 외교가 서희 장군 묘

렌즈로 보는 세상 2014. 11. 26. 07:03

 

 

 

우리 집에서 산북면을 지나 광주시 곤지암으로 가는 길,

꼬불꼬불한 범실고개를 넘어 산북면으로 가는 내리막길에는

'장위공 서희 묘역'(경기도 기념물 36호) 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저 묘가 서희의 담판으로 유명한 서희 장군의 묘일까?"

라고 궁금해하면서도

 늘 일이 있어 고개를 넘다보니 일 년이 넘도록 다녀오지 못했지요.

그래서 그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어제는 작정을 하고 그곳을 다녀왔습니다.

 

 

 

 

 

도로에서 안내판을 따라 5,60m를  내려간 곳에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앞에 두 개의 신도비가 보이고 그 뒤로 현대식 건물인 제실 '상산재'가 보입니다.

비문을 읽어보니 서희 장군의 본은 이천이군요.

'상산재'를 뒤로하고  돌아서니  안내문도 보이네요.

생각했던 대로 그 유명한 서희 장군의 묘가 맞습니다.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서희의 담판에 대해 외우고 또 외웠었는데도 지금은 가물가물하네요

안내문을 보고  확실하게 기억 창고에 넣습니다.

거란의 80만 대군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물리친 장본인이니

그는 장군이라기보다는 외교가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치밀하게 준비한 근거를 바탕으로 반박을 해서 나라를 구한

훌륭한 서희 장군의 묘는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재사와 마주보는 저 상두산자락으로 올라가봅니다.

 

 

 

 

 

묘역으로 올라가는 길의 초입은 이끼 잔뜩 낀 돌로 되어있으나

돌계단을 조금만 올라가면 시멘트 포장길입니다.

100m 정도의 숲속을 걸어가는 구불거리는 길은 걷기에 아주 재미있답니다

한 구비를 돌아가면 또 한 구비가 보이는 길은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소나무가 많은 길이라 건강에도 좋을 길이지요.

 

 

 

 

 

마지막 구비를 돌아서 묘역이 있는 능선에 올라서니 전망이 제대로 좋습니다.

날 맑고 구름 많은 날이라 산북면소재지와 산 위의 렉스필드 골프장도 보이네요.

 

 

 

 

 

 

 

시원한 전망을 본 후에 고개를 돌려 서희 장군의 묘를 봅니다.

서향으로 묘가 앉아있기 때문에 12시가 되었는데도 아직 해가 들지 않는 묘입니다.

역사 속 유명한 인물이라 묘가 웅장하고 호화로울 줄 알았더니

석물이며 묘지가 너무나 단출하네요.

삼단의 축대 위에 조성된 묘가 부인과 쌍분인데도 이렇게 단출하다니....

역시 장례문화는 조선시대가 가장 융성했던 것 같습니다.

장군이 998년 56세로 돌아가셨으니

1116년이란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싶었더니

지금의 묘는 1989년에 보수를 했다네요.

고려시대의 묘라서 그런지

우리가 흔히 보는 조선시대의 묘와는 모양부터 다릅니다.

봉분이 직사각형입니다.

 

 

 

 

 

가까이 가서 비문을 읽어봅니다.

송나라로부터 '검교병부상서' 란 벼슬을

고려에서는 '태보태사내사령' 을 지낸 서희라고 신원을 입증하는 비문입니다.

내사령이라면 고려시대 내사성의 종일품 관직이니

훌륭한 외교술만큼이나 관직도 할 만큼 하신 분입니다.

 

 

 

 

 

묘역 양쪽에는 문인석과 무인석이 각각 한 쌍씩 서있네요.

그런데 세월의 흔적이 얼마나 큰지

얼굴은 이목구비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다만 장검을 땅에 꽂은 석상이 무인석이란 것을 알 수 있더라고요.

 

 

 

 

 

묘 앞에는 장명등도 하나 있네요.

낸 듯 만 듯한 창을 내고 꽃문양을 새겼지만 조촐합니다.

원래는 양쪽에 있었는데 도난을 당하고 지금은 하나만 남았답니다.

그런데 하나 남은 이 등도 위태롭습니다.

이층으로 된 사모지붕도 깨어지고

중간에도 깨어진 곳이 있어 돌로 받쳐놓았거든요.

관리하시는 분들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등입니다

 

 

 

 

 

상석도 아주 조촐합니다.

이곳에도 시제를 지낸다면 이 상석에 음식이 차려진 모습도 보고 싶네요.

묘는 이단의 사각호석을 두른 형태입니다.

쌍분 모두가 다 같은 구조지요.

 

 

 

 

쌍분 뒤로 올라가 봅니다.

무식한 눈에도 명당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산의 이름이 '상두산'이라고 하던데

그럼 여기가 코끼리의 두상과 같다는 터가 되겠네요.

어떤 이는 말하더군요.

서희의 묘는 코끼리의 눈에 해당하는 터라고요.

작은 산이 감싸안은 산줄기의 아늑한 터

남향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선조들이 풍수에서는 대가들이었으니

토 달지 말고 내려와야지요.

 

 

 

 

 

 

서희 장군의 묘소를 내려와 아래로 내려가니 그의 부친인 서필의 묘가 보입니다.

이묘도 부부 쌍분입니다.

1989년 보수하면서 현대식 시멘트로 봉분을 둘러 오래된 느낌은 없지만

터는 정말 좋은 것 같네요.

이런 터에 묘를 썼으니 서희 같은 아들을 둔 것 같습니다.

 

 

 

 

잣송이 뚝뚝 떨어지는 초겨울 오후에 다녀온 '서희 장군 묘',

아무도 없는 구불구불한 산길 따라 올라서 만난 풍경이 고즈넉했습니다.

그 고즈넉함은 묘역의 석물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단출해서

더욱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느낌이 너무 좋았던 곳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