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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가 기도한 남해 보리암

렌즈로 보는 세상 2018. 12. 19. 21:00




20여 년 전에 남해 보리암을

걸어서 올라간 적이 있다.

한 참을 걸어 힘들게 올라갔던 기억과

멀리 보이는 다도해가

너무 아름다웠던 기억이 가물거린다.

그래서 이번 남도 여행에서는 보리암을

다시 올라보기로 결정했다.






그 때만 생각하고 보리암을 갔더니

오래 걸을 필요도 없다.

복곡탐방지원센터 1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셔틀버스(성인 왕복 2000원)를

타고 가도 되고

 2주차장까지 차를 가지고 올라가

주차를 하고 걸어 올라가도 된다.

우리는 2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3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 보리암을 만났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길도 널찍하게 닦여져 있어 

걷기 딱 좋은 거리다.







보리암은 신라 신문왕 3년(683)에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수도한 절로서
금산(錦山)의 한복판에
관음봉을 기대고 위치한 유서 깊은 절이다.

바위의 장엄한 기운이 뭉쳐

의젓한 모습으로,

용을 타고 전후좌우 절을 하는

남순동자 바위와 관음조가 읊조리는 듯한

바위들을 거느리고

남쪽바다 용왕에게

무슨 가르침을 내리는 듯하다.

보리암은 이런 바위들을 등지고 놓여 있다.

그 뒤에 조선태조 이성계가 기도하여

왕위에 오른 일을 감안하여

이씨왕조의 원당으로

또한 호국기원도량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생긴 그대로 절이며,

바위머리마다 자연법당인 이곳은

그늘이 짙은 사부대중들의

기도 수도처라 할 수 있으니

뉘라서 이곳을 아니 그리워하랴.

보리암은 고대로부터 유래가 깊어왔으니

고대의 가락국 김수로왕도

이곳에서 기도하고 대업을 이루었다고 하며

왕의 칠왕자도 외숙인 장유국사(長有國師)

옥보선인(玉寶仙人)을 따라 출가하여

남해 낙가산 금산(錦山) 보리암에서 수도하다가

다시 가야산을 거쳐 지리산 반야봉에서

수도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였다고 한다.

<보리암 홈페이지 참고>





보리암이 이름이 난 것은

아름다운 전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공간 때문이기도 하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3층 석탑(경남 유형문화재 74호)은

가야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돌아올 때 풍파를 만나

건너 오지를 못 하는 중

파사석을 싣고 무사히 건너왔다고 한다.
이 석탑은 원래 김해시 구지봉 산아래에 있는

호계사에 봉안되어 있던 것을

그후 원효대사가 다시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보리암에서 가장 기(氣)가 강한 곳으로 알려진

이곳에는

해수관세음보살상(海水觀世音菩薩像)이 있다.

1991년 한 기업가의 원력으로 세워졌다.

당시 지형적 영향으로

육로로 운반 할 수 없었던

해수관세음보살상은

헬기를 이용하여 탑대에 안치했다.
좌대는 연꽃문양으로

하좌대와 상좌대로 이루어져

서로 마주 보게 포개져 있다.

왼손에는 보병을 들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한 채

가슴에 두었다.

의습은 양어깨를 감싸고

각각의 팔을 휘감으며 아래로 흘러 내렸으며,

흘러내린 옷깃은 그 끝이 살짝 들려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형상이다.

<보리암 홈페이지 참고>


단아하면서 얌전한 모습의 아름다운 석탑과

온화하고 위엄있는 해수관세음보살상이 있는

이곳은 보리암 중에서도 가장 기가 센 곳이란다.

그런 기를 받고 싶은 사람들로 늘 이곳은빈다.







보광전 앞에서 오르내리기를

십 분 정도하면 만나게 되는

곳이 선은전이다.

보리암이 기도처로 유명해진 것은

이 공간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열었다는 곳이다.

이곳에는

'이성계가 기도할 당시에는

보광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이곳 금산에서

100일 기도를 올리며

건국을 빌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성공하면

이 산을 비단으로 덮어주겠노라

산신령께 약속을 했단다.

백일기도가 효험이 있었던지

결국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고

왕에 등극하여 약속을 지키려했으나

조선에 그만한 비단이 없어 고심하다가

이후 1660년 현종 때에

지혜로운 신하의 아이디어로

산 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써

금산으로 개명하고

절 이름을 도보광사에서

보리암으로 바꾸었으면

이 절을 왕실의 본당으로 삼았다.'

는 전설이 있다.


주변에는 바위에 새긴 '이씨기단'이란 글과

'제단석', '기도하던 동굴'이 있어

이곳이 태조 이성계가

기도하던 곳임을 말해준다.

선은전은 태조의 신위를 모셔놓은 곳이다.

양쪽에 있는 비석은

<남해 금산 영응 기적비>와

<대한 중흥 송덕비>다.

1903년에 제작했다고 한다.







날씨가 제법 맑았던 날인 것 같았는데

멀리 다도해를 보는 풍경은 흐릿하기 그지 없다.

그래도 보리암은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그 전망이 아름답다.

암자가 기도처로 유명한 것도 좋지만

이런 풍경을 보고 싶어

보리암을 오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천혜의 환경을 가지고 있는 보리암 참 좋다.

세 번째 보리암을 갈 때면

온 하루를 그곳에서 보내고 싶다.

아침 해 뜨는 것도 보고 금산도 올라

그 아름다운 바위의 느낌도

제대로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