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서리 내린 날에

렌즈로 보는 세상 2007. 2. 10. 22:38



달빛이 하얗게 쏟아지는
가을 밤에
달빛을 밟으며
마을 밖으로 걸어나가 보았느냐
세상은 잠이 들고
지프라기들만
찬서리에 반짝이는
적막한 들판에
아득히 서보았느냐
. . . . .

이렇게 시작하는 김용택의

 "가을밤"
이란 시에서처럼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맘때쯤
과외수업을 마치고 나서 어둠이 내릴 무렵 교문을 나서지만
십리 길 걸어 집에 도착할 때쯤은
논 바닥에 세워놓은 볏단위로 달빛이 하얗게 부서지곤 해서
그걸 바라보는 나는 아득히 뭔가가 그리워서 가슴 아렸어.

그렇게 가슴 시려하면서도 나와 인숙이 기섭이는 오솔길

양쪽의 풀잎을 마주 묶어놓는 작업을 하면서 돌아오곤 했는데,

다른 친구들을 골탕 먹이려고 한 일이 다음날 아침 급하게 학교로

뛰어가느라 우리가 친 덫에 우리가 걸려 넘어졌을 때,

그 기분 씁쓰름함과

약간은 언듯한 땅에 무방비 상태로 넘어졌을 때의

그 아픔이 겹쳐서 소리내어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동생들이 보는 앞이라 애써 괜찮은 척
고개를 옆으로 돌릴 때 

그 때 보이던 볏단위로 하얗게 내린
아침햇살을 받은 서리의 그 찬란한 아름다움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던 것 같아.

 

2002 . 10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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