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산 보기

렌즈로 보는 세상 2007. 2. 10. 22:38



 얼마 전 친정 아버님의 산소를 다녀왔는데,

산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소나무 낙엽을 보며 옛날이 생각났어.

 우리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 시절,
농촌에서 땔감으로 애용되던 것이

가을이면 낙엽으로 떨어져 뒹굴던 나뭇잎들이였어.

초등학교 저 학년일 적에는

산의 나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따라 나무를 하러 산에 갔었어.

 

아버지가 베어놓은 마른 풀잎과

우리가 갈비라고 불렀던 낙엽을

까꾸리로 긁어 모으는 일을 서투르게 거들어서

 아버지가 칡넝쿨로 만들어준 끈으로

잎이 무성한 생소나무 가지로 포장하듯이 둘러싼 갈비를 한 짐 지고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그 나무를 하는 시간과 해질 녘의

산길을 걸어오는 시간의 우리 형제들과 아버지의 대화는

항상 평화롭고 화기애애했어.


그렇게 즐겁던 시간도 고학년이 되면서 다 큰 딸에게

남자가 하는 일을 시킬 수 없다는 부모님의 의견과

이제는 그 일을 부끄러워 못하겠다는 우리의 의견이 합치되어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 다음 일이 산의 나무를 다른 사람이 훔쳐갈까 봐 지키는 일 산 보기였어.


산 보러 가는 일은 아버지께서 볼일을 보러 집을 비울 때

하는 일이라 혼자 가거나 동생과 함께 갔었는데,

햇살이 포근하거나 바람이 잔잔하게 일렁이는 날에는

그 사각 거리거나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를 들으며

동생과 함께 흙 웅덩이를 파고 거기에 갈비를 불싸게(불쏘시게)로 속에 넣고

그위에 에스키모의 얼음 집 형태로 소나무 껍질을 쌓아서 불을 피워놓고

공기를 한다거나 땅따먹기를 하며 즐겁게 보낼 수 있었는데,

문제는 날씨도 흐리고 스산한 겨울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때

혼자서 산을 보러 가는 일은 정말 지옥이었어.

가기는 싫지만 어른들의 명을 거역할 수도 없어서

가긴 가면서 제발 나무를 훔쳐가는 사람이라도 있어달라고 기원하곤 했어.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혼자 산을 보러가는 일은 사색하는 즐거움과

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

2002 . 11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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