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미리 가 본 고향

렌즈로 보는 세상 2007. 2. 10. 22:51



 2주 전 쯤 서울에서 개성이 보였다던 그날

너무도 청명한 날씨 덕분에 고향을 다녀왔다.

왜 날씨 덕이냐고? 

하늘이 파랗게 높아 보이고

서늘한 바람이라도 불고 하얀 구름이라도 떠다니는

그런 가을을 닮아가는 날에는

고향이 생각나는 날인데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거든.

 

 아침 일찍 애 학교 보내고 남편 출근 하고 나니 8시 30분,

 서둘러 카메라 가방 챙겨서

먼저 내 고향 우무실로 가서

거의 폐가가 된 우리 집 안 밖을 기록해두고 동네를 기웃거리니

 친정집 이웃에 살고 계시는 엄마 친구인 곰실댁이

기어이 집에 들어와서 쉬어 가라고 손을 잡아끈다.

 

빈 손으로 친정동네를 찾은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긴 했지만

반겨주는 것이 고마워 따라 들어가니

커피 마실거냐 요구르트 마실거냐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 딸에게 뭐든 마실 것을 주고 싶어하신다.

 

그 마음 감사해서 평소 잘 마시지도 않던 커피를 청해서 마시며

부엌을 들여다보니 

80대 중반의 할머니가 관리하는 곳이라고

믿어지질 않을 만큼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과,

 거울처럼 반짝거리는 가마 솥이며

그 뒤쪽 벽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적당히 닳은 노란색 양은 냄비 세 개,

여름 철 냉장고를 대신하던

철사로 만들어 처마 밑에 매달아 두고 음식을 보관하던 바구니 등

어릴 적 내가 보았던 부엌의 모습에 가슴 뭉클했다.

 

그 느낌 빨리 떨치고 싶지 않아 댓돌에 앉아

따가운 햇살에 빠알갛게 말라가는 발 위의 고추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된장에 넣어 먹으라며

텃밭에서 따주시는 풋고추를 얻어가지고 나오는데

아버지 산소에 들렸다가 다시 들려 점심이라도 먹고 가라는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신다.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이래서 사람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산소에 들렸다가,

온 김에 무섬을 들려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가는 길에

종릉이에서 세뱅이로 가는 길이 나 있기에 가 보았더니

우리 친정동네나 그 동네나 진입로부터 산골임을 실감나게 했다.

 

잠깐 동네 어귀에 내려 보았으나

옛날의 모습은 느껴지지 않아서 돌아나와서

 버드래이, 막주고개, 도래를 지나 시낼과 주느골로  가보았다.

어릴 적에도 자주 가보지 않았던 동네라 친구들 집도 모르니

예전에 분교였던 학교에 들어가 보았다.

 

아직도 그 학교가 분교로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

곳이 학생 네 명에 선생님 세 분인 벽지 학교라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방학이라 선생님들은 계시지 않고,

행정실 직원이 계셨는데 들어와서 차 한잔 마시고 가라고 하셨다.

 

차를 마시며 옛날에 가보았던 위자네 집을 물어보니

그 선생님도 올해 처음 부임해온 분이시라 모르시더라.

 시골 학교에 근무하는 분 특유의 학교 자랑을 들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전임 교직원 명단에 조진태 선생님의 성함이 자주 보여서 반가웠고,

그런 아늑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선생님들은

참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문 밖까지 배웅해주는  그분이 고마워

겨울에 눈이 오면 내가 차를 대접하러 들리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주느골로 갔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동네로 들어가서 이집 저집 기웃거려 보았지만

아는 사람들도 없고 해서 나오다가 

 동네어귀 외딴 집에 안어른이 계시기에 물이나 한 잔 얻어먹자고 들어갔더니

수돗물은 별로 시원하지 않다며 냉장고에 물을 꺼내주셨다.

 

고맙기도 하고 해서 한참을 이야기 하다보니 그분이 병락이 엄마라고 하더라,

 차림새며 인상이 훤한 것을 보니 

병락이가 잘하는 모양이라고 말씀드리니

여늬 부모님들처럼 자식 자랑을 하더라.

 

우리 친구가 부모님께 칭찬 받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가슴 뿌듯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병직이네 고향 집에도 눈도장 찍고,

무섬을 들렸다가 납들고개를 지나 미림이까지 갔다가 돌아오면서

桑田碧海란 말을 실감했다.

 

 평은국민학교에 다니던 부락중의 오지였던 납들고개가

그렇게 시원하게 이차 선 도로가 뚤릴 줄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옛날에 평은면 수도리인 무섬동네가 문수면 수도리로 바뀔 줄은? 

 

2005 . 9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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