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진이야기

전시장에 오신 육명식 선생님 작업

렌즈로 보는 세상 2007. 8. 26. 17:23
문인들 사귀는 재미로 시작한게 '文人의 사진가' 됐지
[조선일보] 2007년 06월 07일(목) 오전 00:05   가| 이메일| 프린트

사진가 육명심(75)씨는 예술가들의 얼굴을 찍는 예술가다. 50여년간 문인들의 인물사진을 찍어왔다. 그가 촬영한 우리 문단 대표적 문인 71명의 사진 120컷과 문인들 이야기들이 ‘육명심의 문인의 초상’(열음사)이라는 책에 담겨 나왔다. 강은교 고은 구상 김광림 김남조 김동리 김종삼 김춘수 모윤숙 박두진 박목월 박종화 서정주 선우휘 신경림 양주동 오규원 윤석중 이동주 이범선 조병화 차범석 천상병 피천득 등을 가까이에서 담고 그들을 만나며 겪은 이야기, 느낀 점을 짧은 글로 함께 실었다.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육씨는 원래 문학청년이었지만 졸업 후 직업으로 사진가를 택했다. “원래 시를 썼기 때문에 문인들 얼굴 찍는 걸 좋아했어요. 문인 사진 첫 작품은 대학시절 찍었어요. 교양국어 선생님이었던 박두진 시인이 시집 ‘하얀 날개’를 낼 때 제가 시집에 게재할 선생님 사진을 촬영한 거였어요. 그때 소문이 좋게 나서 다른 문인들 사진도 하게 됐지요. 문인들 사귀는 재미로 한 거라 30년이 지난 이제야 책으로 내게 됐어요.”

그는 이 책을 가리켜 ‘나의 문단 교류기’라고 했다. 그는 ‘모델’이 된 문인들을 가까이에서 사귀며 그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찍어 왔다. 저고리 고름을 풀어헤친 고은 시인이 이불도 개지 않은 방바닥에 멋없게 앉아 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찍는 식이다. 그래서 논란도 종종 일었다.

“한 중견 시인이 제가 찍은 미당 서정주의 사진을 보고 노골적으로 화를 냈어요. 쭈그리고 앉은 시인을 촬영했는데, ‘뒷간에서 볼일 보는 것 같은 모습을 감히 어떻게 찍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어요.”





사진 찍히던 당시엔 30~40대의 청장년들이었던 그의 모델들은 이젠 노장들이고, 절반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진을 들여다 보면 그들과 함께 했던 순간 하나하나가 떠올라 몹시 그리워진다”고 했다. 육씨가 기억하는 최고의 문인은 구상 시인이다.

“저는 구상 시인만한 의인(義人)을 본 적이 없어요. 오죽하면 김종삼 시인이 ‘서울의 예수’라 했을까. 구 시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사석에서 말을 터놓고 지낼 만큼 아주 가까웠어요. 한 번은 박 전 대통령이 구 시인을 불러서 한 일간지 사장을 맡아달라 했는데, ‘편집권과 경영권을 일체 다 맡기면 하겠다’고 답하니까 박 전 대통령이 ‘에이 이 사람, 하기 싫다는 얘기군’ 했대요. 세속적인 일에 뜻이 없으니까 슬기롭게 거절한 거지요.”

그는 대학 때 시를 쓰면서 연극반 활동을 했고 미술과 사진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의 사진첩에는 연극인들, 국악인들, 미술인들 사진도 많이 들어 있다. 사진가이면서 ‘세계사진가론’(열화당) 등 이론서도 많이 펴내 사진계에선 부지런한 사람으로 이름 났다. “예술가들 사진을 찍으면서 그 사람들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됐어요. 제 사진들이 그들이 남긴 문학작품과 미술작품처럼 오래 남아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