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진이야기

전시장에 오신 주명덕 선생님 작업

렌즈로 보는 세상 2007. 8. 26. 17:28
이 사진전 놓치면 후회"-신세계본관 주명덕 전
[헤럴드생생뉴스] 2007년 06월 15일(금) 오후 02:58   가| 이메일| 프린트
요즘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관에 가면 귀한 사진들을 볼 수 있다. 바로 사진가 주명덕(67)의 사진이다.

올해초 새 단장을 마치고 그 어떤 백화점보다 우아하고, 세련된 곳으로 재탄생한 이 백화점 본점 본관의 아트 월(Art Wall:엘리베이터 앞과 통로 등에 조성) 곳곳에 내걸린 주명덕의 사진은 값비싼 명품보다 더 빛을 발하며, 오가는 이를 사로잡는다.

전시 날짜가 얼마 안 남았지만(원래는 6월20일까지나 백화점측에서 25일까지로 연장했다) 놓치면 후회할 전시다. 쇼핑을 하면서 예술감상도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니 말이다.

신세계갤러리(관장 지명문)가 마련한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주명덕 사진전-빈티지 프린트(Vintage Print)’전이다. 이 전시에는 주명덕의 196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모두 147점의 사진이 출품됐다. ‘빈티지 프린트’란 촬영에서부터 현상, 인화, 정착까지 일일이 작가의 손을 거침으로써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구현해낸 사진을 가리킨다. 이번 주명덕의 빈티지 사진은 △인물 △전통과 건축 △잃어버린 풍경 등 세가지 주제로 나눠 백화점 지하 1층에서 6층까지 70여개 아트 월에 내걸렸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작가 나이 서른둘, 한창 푸릇푸릇했던 1972년 ‘헌사(獻寫:사진을 바친다는 뜻)’라는 이름 아래 개인전을 가졌던 곳(당시 신세계미술관)에서 35년만에 다시 개인전을 갖는다는 점. 작가는 이렇게 돌아와, 반가운 누님처럼 거울 앞에 섰다.

주명덕은 한국사진계에서 ‘Art Work을 한 1세대 사진가’로 평가된다. 그의 사진은 오로지 사진으로 살아온 그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국 사회가 걸어온 지난한 길 그 자체인 것. 그러나 그의 사진은 거칠지 않다. 부드럽고 따뜻하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그가 선보인 사진들은 실로 다양하지만 모든 사진들이 굳건히 지켜온 ‘사실적 기록성’은 그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초석인 셈이다.

이번 신세계 백화점이 마련한 주명덕 사진전은 자그만치 70여 벽면에 분산돼 감상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투어이자 여정이다. 나쁘게 보면 산만할 수 있지만 새로운 도전이자 경험이기도 하다. 먼저 회현지하상가를 통해 신세계 지하 1층으로 들어서면 지리산, 설악산을 담은 대형 사진들이 눈에 들어온다. 흔히 ‘주명덕의 검은 풍경’이라 부르는 ‘잃어버린 풍경’시리즈다. 작품은 대체로 어둡고 침잠하듯 차분하다. 하지만 작가는 ‘결코 검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내 기준에선 밝다”고 되뇐다. 아닌 게 아니라 온통 검은 빛 일색이지만 자세히 보면 빛이 있고, 농담이 있다.

이어 1층을 거쳐 2층으로 오르면 안동, 강릉, 경주의 전통가옥과 사찰, 담장, 문창살 등의 사진이 우리의 전통건축이 조형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준다. 경기도 화성(華城)을 촬영한 ‘수원성’ 시리즈(8점)는 한국 고건축물의 담백한 양식미를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3층으로 올라가면 주명덕이 선사하는 1960~70년대, 가난했지만 맑았던 시절의 향수를 만끽할 수 있다. 쇼핑객의 반응도 가장 뜨겁다고 한다. 3층에는 유독 인물사진들이 많다. 김미숙, 윤영실, 원미경, 차화연, 김진아 등 여성 연예인들이 윙크하는 표정을 포착한 ‘윙크 시리즈’부터 김동리, 신석정, 은희경, 김용택, 이불, 이철수 등 예술가들의 초상사진, 평범한 가족들의 가족사진 등을 두루 접할 수 있다.

닭들이 모이를 쪼는 앞마당 평상에서 한껏 엄정하게 포즈를 취한 시골가족들(‘익산, 1971년’),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밝은 모습(‘목포, 1970’), 양말과 옷가지가 줄줄이 널린 빨래줄을 배경으로 자뭇 진지한 표정을 지은 부부(‘성남,1972’) 등은 우리네 진솔한 초상을 압축한, 어질고 찰진 사진이다.

또 홀트씨 고아원의 혼혈아들, 이방인들, 보호시설의 노인 등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처한 환경과 상황이 범상치 않다. 하지만 결코 처연하거나 구차스럽지 않다. 가난하지만 당당하고, 투박하지만 따뜻하다.

5,6층으로 올라가면 기록적 성격이 강했던 60-70년대 사진과는 사뭇 다른 사진들이 눈에 들어온다. 주명덕은 1980년대 말부터 ‘잃어버린 풍경’이라 불리는 풍경사진을 찍어왔다. 어두운 흑백의 톤에 산과 나무, 잡풀이 거의 파묻힌 듯한 풍경사진은 독특한 서정을 뿜어낸다. 꾹꾹 눌러, 검게 인화한 사진들 앞에서 우리는 ‘무언가 찾아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그러나 그냥 바라보며, 각자 느끼면 그만이다. 작가 역시 대상을 그저 놓아둠으로써 어떠한 감성도 강요하지 않고 있다.

신세계 측에서는 아트 월마다 전시 내용을 알리는 설명문을 붙이고, 작품 해설을 맡을 도슨트(전시안내원) 3명을 따로 두고 있다. 백화점에 상주하며 도슨트로 활동 중인 김미경 씨는 “무심코 아트 월을 지나치는 분들이 많지만 너무나 반가와하며 전시를 음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며 “동생을 포대기로 업고 있는 상고머리 소녀 사진을 보며 ‘완전 내 어릴 적 모습!’이라고 탄성을 지르는 여성, 옛 추억이 떠올라 가슴이 뻐근했다는 남성 등등 호응이 꽤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김씨는 “사전에 미리 전시와 관련된 해설을 예약하거나, 당일이라도 백화점 6층 프리미엄 데스크(02-310-1812, 무료)를 찾아 도슨트의 전시안내를 요청하면 40~50분간 백화점 곳곳을 돌며 1:1 작품해설을 받을 수 있다”고 귀뜸했다.

전시를 지원한 박영숙(사진가, 트렁크갤러리 대표)씨는 “이번 주명덕의 사진작품은 섬유질 종이(fiber-base-paper)에 작가가 아날로그 프로세스로 공들여 프린트한 것”이라며 “이번 빈티지 프린트를 통해 장인정신이 숨쉬는 흑백사진의 힘과 의미가 많은 이들과 새롭게 소통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트렁크갤러리측은 작가와 협의해 작품 12장 한질(1세트)를 다섯종으로 묶어 ‘주명덕 빈티지 프린트 사진모음집’(한정판 에디션 5)도 내놓았다. ‘한국의 서정’시리즈 세종류와 ‘잃어버린 풍경’시리즈 두종류가 있다. 02)727-1541
▲주명덕 작가는?=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나 1961년 경희대 사학과를 수료한 뒤 1962년 ‘현대사진연구회’에 가입하며 사진활동을 시작했다. 올들어 스페인 마드리드의 ‘ARCO2007’ 초대전까지 총 12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중앙일보 기자, 민족사진가협회회장 등을 역임했다.

1960년대부터 6.25가 낳은 혼혈고아들, 인천 중국인촌 등 소외된 계층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냄으로써 사진의 ‘사회적 기록’ 가능성을 열었다. 이후 샤머니즘, 전통 문화유산, 산하(山河), 도시풍경으로 앵글을 옮겨가며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왔다. 특히 1980년대말 시작한 ‘잃어버린 풍경’에서는 언어화할 수 있는 영역 저 너머의 것을 추구하는 독특한 경지를 선보이고 있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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