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진이야기

전시장에 오신 권태균 선생님의 작업

렌즈로 보는 세상 2007. 8. 26. 18:00
강운구·권태균 사진집 ‘근대화·개발에 멍든 농촌, 30년 전과후’
[경향신문] 2006년 09월 14일(목) 오후 06:16   가| 이메일| 프린트

전북 장수군 수분리. 30년전 건새지붕을 얹은 흙집은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벽돌집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마을의 골목길은 그대로며 돌담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할머니 등에 업혀 이방인의 카메라를 바라보던 아이는 30대 중반의 중년이 됐다. 헐벗은 민둥산은 울울창창한 삼림으로 바뀌었고 거칠 것이 없던 들판에는 전신주와 송신탑이 열지어 세워졌다. 30년이란 그런 세월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키 작은 잡목들이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는 동시에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한 시대의 생활 양식과 문화가 송두리째 바뀌는 시간이다.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구석구석에 몰아닥친 개발의 파고는 사진을 통해 더욱 여실히 증명된다. 사진가 강운구씨는 1970년대초 내설악 자락의 인제 용대리와 치악산 아래 원주 황골, 전북 장수의 수분리 풍경을 기록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2001년 ‘마을 삼부작’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연 강씨는 그곳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사진으로 기록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제 용대리등 변화상 기록-
 
 

치악산 아래의 원주 황골. 1974년 황량했던 밭에는 번듯한 양옥집이 들어섰고 자갈길은 신작로로 변했다. 사진속 아주머니(현재 78세)는 지금도 산자락에서 살고 있다.
이런 강씨의 생각을 후배 사진가 권태균씨가 흔쾌히 실행에 옮겼다. 30년 전 강씨의 필름더미 속에 기록된 촬영데이터와 사진을 근거로 권씨는 2003~2005년 용대리와 황골, 수분리를 각각 7~8차례 드나들며 흑백필름에 담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최근 ‘강운구 마을 삼부작 30년 후’(열화당)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책을 펼치면 ‘마을 삼부작’과 ‘그 후’가 병렬로 배치돼 누구라도 쉽게 30년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다. 권씨는 구도와 촬영 시기, 촬영 위치는 물론이고 사용하는 렌즈를 최대한 비슷하게 맞췄다. 그러나 번번이 난관에 부딪쳤다. 30년전의 현장을 혼자서는 찾을 수 없는 곳이 많아서였다. 몇 차례 강씨가 동행했지만 그렇다고 작업이 수월한 것은 아니었다.

-“가난해도 풍족해 보엿는데…”-풍경은 너무 변해 있었다. 용대리의 너와집은 허물어져 있었고, 수분리의 건새집(억새 줄기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올린 집)은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개량가옥으로 바뀌었다. 돌담은 시멘트 담장으로, 흙길은 신작로로 단장되었다.

주거환경만 바뀐 게 아니다. 농사짓던 사람들은 이제 한철 관광객을 위한 식당과 모텔영업으로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가 하면 겨울철 한데모여 윷을 놀거나 짚새를 꼬던 노인들은 이제 마을회관에서 화투를 치거나 TV를 보내며 소일한다.

이 사진집의 목적은 그저 사라져버린 과거를 추억하고자 함이 아니다. 책에 평문을 쓴 문광훈씨는 이 사진집을 “이 땅의 도시화, 산업화가 야기한 물리적 지리적 생활세계적 심리적 불모성에 대한 문화사적 기록물”이라고 평가했다. 권씨는 전화통화에서 1880년대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촬영된 지형사진을 100년 후 다시 촬영한 ‘리포토그라피 서베이’나 1880년대 프랑스 파리를 재개발하면서 사진가 으젠 앗제 등이 개발 전후의 모습을 담은 사진기록작업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해놓아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그런 문화가 정착이 안돼 아쉽다”고 했다.

사진집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양식은 편해졌지만 삶의 층위들이 모여 형성하는 우리의 문화는 얼마나 척박해졌는가를 증언한다. 30년의 변화를 목도한 강씨는 “예전엔 가난해도 풍족해 보였는데, 지금은 풍족한지는 모르지만 가난해 보인다”고 말한다.

〈윤민용기자 vista@kyunghyang.com〉-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미디어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