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진이야기

사진가 성남훈

렌즈로 보는 세상 2007. 10. 15. 10:49
성남훈 '유민의 땅'
글쓴이 : 이재성 번호 : 399조회수 : 192006.11.13 02:07
본 전시는 1991년부터 2005년까지 파리 외곽, 루마니아 집시, 몽골의 유목민과 맨홀에 사는 거리의 아이들, 쿠바 한인후예들, 소록도, 전쟁을 겪고 있던 보스니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20개국에서 기록해온 작업이다. 이 작업은 이민자로, 집시로, 난민으로 유민이 되어 밀리고 떠도는 존재들의 사라짐을 막는 아름다운 인간정신의 사진이다.




루마니아집시_1992 / 루마니아집시_1992
몽골유목_2001 / 쿠바의한인후예들_2005


그늘진 삶의 가장자리로 가다. ● 성남훈이라는 이름을 듣거나 떠올리게 되면 맨 먼저 날아드는 것이 루마니아 난민 풍경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사진평론가들은 유독 한 사진가의 이름을 기억할 때 그 사진가의 사진적 인상과 그에 대한 데이터를 꾸리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는 사진의 풍경이 곧 작가의 풍경이라는 사진의 무게가 작가의 삶의 무게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아무리 사진이 객관적인 매체라고 해도 작가의 내적 성찰과 사상의 표출인 한은 한 사진가가 세상과 마주했던 세상의 모습은 필연적으로 그 사진가의 삶의 태도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정신세계의 발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이 철학이고 철학의 모습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백혈병_2005 / 소록도_1993
달동네_2004 / 스페인아나키스트_1994



성남훈은 루마니아 난민 풍경에서부터 자신이 어떤 성향의 사진가인지를 알게 했다. 뿐만 아니라 어떤 태도로서 세상을 노출하는지, 또 자신에게 쥐어진 카메라로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비록 아직은 학습하는 자의 순수한 시선이었고, 또 아직은 감성과 서정성에 의지하는 예술적 미감을 앞세운 사진이었지만 그의 태도는 삶에 한 걸음 가까이,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으로, 중심보다는 주변으로 향하겠다는 사진적 태도를 알게 했다. 루마니아 난민 풍경은 바로 그 점에서 그가 이후에 어떤 사진의 길을 걸어 갈 것인지, 또 어떤 자세와 태도로서 세상과 삶을 노출할 것인지를 알게 하는 단초적 사진들이다.

 

인도네시아쓰레기장_1998 / 포르투갈이민자들_1993
말리이민자들_1992 / 거리의아이들-몽골맨홀_2001

개인적으로 성남훈의 모노그래프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어쩌면 그 옛날 <사진예술>을 통해서 처음 만났던 루마니아 난민 풍경들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고, 아주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을 소재로 했던 사진들에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충분히 모노그래프를 남길 만큼 일관된 사진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또 그럴 만큼 충분한 시간, 충분한 사진들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변치 않는 정신세계와 삶의 태도이다. 요즘 그를 만나면 두 가지를 말을 건넨다. 루마니아 난민 사진에서 처음으로 보여준 그때의 인간사랑의 공명과 감정의 떨림을 잃지 말라고, 또 세월이 가도 이제껏 그가 보여준 사진에서처럼 그의 삶 속에서도 인간사랑의 냄새를 맡게 해달라고.



인도구자라트지진_2001 / 인도네시아지진해일_2005
보스니아내전_1996 / 코스보난민_1999



아름다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다  ● 성남훈의 사진 속 눈동자에서 나는 지난 6년 동안 / 눈물 흐르는 지구마을의 골목길에서 마주친 그 눈동자를 다시 만난다. / 폭격으로 무너진 골목길에서, 촘촘한 총알 구멍 뚫린 부서진 집 앞에서, / 모래 바람에 펄럭이는 찢어진 천막 안에서, / 지진과 해일에 휩쓸린 폐허의 지평선에서, / 태양도 빛을 잃은 지하 공장과 / 화려한 도시 외곽의 쓰레기더미와 황량한 고가도로 밑에서, / 사진 속 맨발의 저 아이들이, 휑한 눈망울들이 지구 위를 흘러간다. / 이민자로, 집시로, 난민으로, 流民이 되어 / 流民이 되어 아프게 흘러간다. / 그들이 흘러 다니는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악기, / 流民들의 떨어지는 눈물방울로 연주되는 악기, / 한숨과 울부짖음으로 가창(歌唱)되는 지구시대의 뼈아픈 노래다. / 성남훈의 카메라는 그들의 연주와 노래를 정직하게 찍어 보인다. / 그의 사진 한 장 한 장은 / 총알 박힌 내 가슴의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보듯 / 이렇게 생생한 쓰라림으로 되살아온다. / 지구의 구석진 쓰레기터에 날리는 비닐봉지처럼 떠도는 사람들. / 살가도의 말처럼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욕망과 / 꿈과 권리를 가진 사람들'인가? / 이들은 정녕 불쌍하게 여겨져야 할 사람들인가? / 성남훈의 사진은 '아니다'라고 나직이 부르짖는 것만 같다.




코스보난민_1999 / 르완다난민_1997
이디오피아기아_2000 / 인도네시아민주화_1998


이 작은 지구별 위에서 사람으로 목숨 받고 태어난 우리는 / 저마다의 정량(定量)을 갖고 태어났으리라. / 우주가 담긴 '몸'만큼의 밥과 대지와 집과 짝과 꿈과 / 사랑을 갖고 태어났으리라. / 누군가 자기 정량 이상을 가지면 누군가는 정량을 잃게 되고 / 누군가 땅을 침범하면 누군가는 자기의 땅에서 밀리고 / 뿌리뽑혀 떠돌게 되리라. /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생텍쥐페리)이 아니지 않은가. / 사막이 아름다운 건 지구 저편에 자신의 푸른 물과 / 숲을 내어주기 때문이 아닌가. /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제 몸이 이렇게 메말라 가면서. / 인간 사회의 법칙은 시소의 어느 한쪽이 기울면 어느 한쪽은 허공에 뜨는 법. / 불가항력이라고 하는 자연재앙마저 결코 평등하지 않는 법이다. / 강도 9의 지진이 났을 때 부자나라 일본은 50명이 죽지만 / 가난한 방글라데시와 아체는 4-50만이 죽어 간다. / 가난은 결코 그들이 게으르거나 무능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 전쟁은 결코 폭력성을 내장한 인간 본성 때문만이 아니다. / 밀리고 떠도는 流民들은 이념 때문만도 문명충돌 때문만도 아니다. / 그것은 미국과 서구 선진국의 기나긴 식민지배라는 엄연한 역사적 유산 탓이고 / 석유와 자원수탈과 무기수출과 투기자본과 독재권력의 결탁의 결과들이다. / 나는 세계의 빈곤지역과 분쟁현장을 다니며 이 무섭도록 냉엄한 진실을 / 생생히 목격하고 새삼 두 발로 확인해 왔다.




이라크전쟁_2003 / 이라크전쟁_2003
아프카니스탄전쟁_2005 / 아프가니스탄전쟁_2002


성남훈은 한국의 치열했던 1980년대를 호흡하고 혁명을 고뇌하던 예인이다. / 그는 1990년 초부터 국경 너머 더 고통스러운 세계의 현장을 발로 뛰며 쓰라린 진실을 기록해 온 세계에 내놓을 만한 / 몇 안 되는 한국의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