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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돌담과 사람들, 오래된 일을 하는 모습이 정겨운 서미동

렌즈로 보는 세상 2011. 10. 10. 12:50

오래된 돌담과 사람들, 오래된 일을 하는 모습이 정겨운 서미동

빛 고운 가을 날에 찾은 그곳은

몇 년 전에 찾았을 때보다는 조금 변했지만

여전히 옛날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어 정겨웠다.

 

서미동에 이런 안내판이 세워졌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오래된 마을과 유적이 있는 이곳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모양이다.

 

서애 류성룡선생이 영의정을 지내다 삭탈관직 당한 뒤

58세에 고향 안동으로 돌아와 옥연정사에서 임진왜란의 실상을 기록하여

후세들에게  환난에 대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징비록을 집필한다.

 

그 어려운 장고를 끝내고

64세 9월에 스스로 죄인임을 자처하며

이곳 서미동으로 들어와 <농환재>라는 초가삼칸을 짓고 기거하다

66세인 5월 6일에 세상을 뜰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지금 <농환재>의 위치는 확인할 수 없고 기록으로만 남아있다.

 

서미동은 학가산 깊은 자락에 있어

청음 김상헌선생도 이 곳에서 기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서미동 뒷산의 중대바위의 위용

이 바위와 산새 때문일까 이 동네는

산골마을 치고는 인물이 많이 난 동네이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에 곡식을 말리는 할머니의 손길이 바쁘다.

 

 

 

서간사 강린당

이곳은 청음 김상헌선생이 낙향하여

제자를 모아 강론을 하던 곳이다.

 

 

청음선생이 서미리에 거처를 옮긴 후에 당호를 '목석거'라고 지어 달았으나

현재 목석거는 남아있지 않고

후에 7대 손인 안동부사 김학순이 이 바위에 목석거란 각자를 하고

비각을 지어  '목석거유허비'를 보관하였다.

 

 

서미동에 가면

어느날이라도 베를 매는 할머니들이나

삼는 할머니들

또는 짜는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

 

옛날 우리 어머님들이나 할머니들이 하던 일을 지금도 이곳의 어른들은 하고 있어

우리를 어릴 적 고향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하는 곳이다.

우리 어매는 농사일을 끝낸 겨울에 하던 일을 지금은 가을 날에 하고 있으니

손도 데우고 베도 말리던 겻불은 옆으로 밀려나있다.

 

 

아직도 이런 화장실이 남아있는 서미동

안을 들여다보니

변기통은 신식으로 들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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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서미동에는 한 집 두집 어물어져가는 집들이 있다.

머잖은 날에 이 마을의 모습이 없어질까봐 걱정이다.

 

서미동은 어느 집 어느 골목을 돌아가도 이런 돌담을 만날 수 있다.

 

 

마당 가득 곡식을 널어놓고 선별하는 할머니

 

 

 

이 동네를 지키는 당나무인 느티나무

400살이란 나이에 걸맞게 우렁차다.

오랜 세월을 마을의 안녕을 지켜왔을 것이다.

 

 

 

 

 

서간사 강린당 지붕에는 풀들과 이끼가 자라고 있어 세월의 무게를 알수 있는데

서미동은 저 지붕의 역사보다 더 오래일 것이니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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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이 골목길을 오갔을 할머니의 허리에 내린 세월의 무게가 무거운 게 마음 짠하다.

 

서미동

오랜 세월에도 아직 많은 돌담의 모습이 아름답고

허리 굽었지만 아직 베를 매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정겨운 곳

어릴 적  우리 고향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

오래도록 보전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