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추억의 그림자

친구가 있어주어 행복한 날

렌즈로 보는 세상 2011. 11. 15. 23:27

 

 

 

                 

                  어제 저녁에 황정민 아나운서의 세미나를 다녀와서 좀 피곤해서

느지막하게 아침을 먹고 딩굴거리며 좀 쉴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내 둘도 없는 친구 K이다 .

그런데 전화하는 목소리가 이상했다.

애써 힘을 주어 말하려고는 하는데 힘이 없고

주변에 사람 소리가 들리는 게 평소 집에서 하는 전화와는 느낌이 다르다.

 

우리는 거의 매일 전화를 주고 받기 때문에

휴대폰으로 전화를 할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오늘은 휴대전화다.

 

 

 

 

" 아니 니 지금 집이 아니라?"

 

"그래, 그런데 니 내 대신 제주도에 갈래?"

 

"아니 제주도는 왜 니가 안가고?"

 

"내가 산에 갔다가 조금 다쳐서 제주도에 갈 수 없을 것 같애."

(고등학교 모임에서 제주도를 가는데

나는 집안에 결혼식이 있어 가지 못한다고 했고 그 친구는 가기로 했다.)

 

"뭐라고? 그럼 지금 병원이라? 어느 병원?"

 

                                      " 크게 다친 건 아니고 그냥 조금 다쳤으니 병원에는 올 필요 없어."

 

           "가고 안가고는 내맘이고, 어느 병원이로?"

                                                                            

  나는 계속 묻고

                                                             친구는 가르쳐주지 않기를 한참이나 하다가 내가

 

                                                           "알았다 니 가는 병원, 그 병원 맞제? 내가 금방 갈께."

 

 

나는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갔고

친구는 며칠 새 눈에 띄게 수척해져있었다.

우린 반가움에 서로 얼싸 안았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친구부부는 지난 토요일 1박 2일로 고등학교 동기 모임을 한다는 소리는 알고 있었는데

그날 산을 오른 모양이다.

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작은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친구는 계곡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일행들이 허겁지겁 친구를  업고 내려와서 119를 불러 병원으로 후송했고

가까운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대전의 종합병원으로 다시 후송되고

거기서 검사를 하니 머리에 충격을 받으면서 뇌에 약간 내부출혈이 있었으나

더 진행은 되지 않는 것 같다고 해서 다시 서울로 후송되었단다.

 

후송되는 과정에서 친구는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서울 병원에서도 정밀 검사를 했으나 일단 피가 멈췄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며

지켜보고 별일 없으면 모레 쯤에는 퇴원을 해도 될 것 같다고 한단다.

 

 

 

 

 

중고등학교를 함께한 친구는

작은 체구에 단아하고 아름다운 외모와 그 외모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씨로 늘 주변의 사람들을 감싸안아주는 스타일이라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강단있고 따스한 마음씨로 아이들도 잘 키우고 내조도 잘해서 아이들이나 남편 모두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내가 잠깐 가있는 동안에도 남편도 바쁜 시간을 내서 다녀가고

외국에 나가있는 딸아이도 며칠동안 엄마 목소리가 이상하다며  전화가 와서 할 수 없이 이야기를 하니

'그렇게 병원 말만 듣고만 있어도 되냐며 염려가 끝이 없다.'

 

친구와 나는 

우리 건강을 챙기는 것이 가족을 위한 배려라는 걸 알았다. 

 

 

 

 

큰일을 겪고난 우리는 이전의 헤어짐과는 또 다른 애틋한 헤어짐을 느꼈다.

 어쩌면 다시는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까지는 어깨동무을 하고 나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도 잡은 손을 놓지 못해

문이 닫힐 때에야 손을 놓았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이제 얼마나 많은 가을을 친구와 함께 보낼지는 모르지만은

어느날 친구가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머리가 하얘지고 가슴이 콱 막히는 느낌이다.

 

40년을 함께한 친구

내 마음 속의 모든 걸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

자식이나 남편의 흉이나 허물도 마음놓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친구

특히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마음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이 세상이 행복한 지금이 참 좋다.

이런 행복한 시간이 길었으면 하고 빌어본다.

 

 

99

'일상 > 추억의 그림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난 가을의 추억  (0) 2011.11.28
겨울의 초입에서 농촌을 돌아보다  (0) 2011.11.26
아직 꽃 띠랍니다.  (0) 2011.10.29
지금은 이사중입니다.  (0) 2011.10.26
태아에게 주는 예쁜 사랑  (0) 2011.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