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추억의 그림자

자고로 남자는.....

렌즈로 보는 세상 2012. 3. 6. 12:24

 

 

 

아침 일찍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는 길을

사람들이 우산을 받춰들고 부지런히 각자의 일터로 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고향에서 일터로 향할 남편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남편이 퇴직을 한 지 벌써 일 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습니다.

 

퇴직하기 전에

삼십 년을 넘게 매일 집을 나서던 사람이

그런 일상에서 벗어난 삶을 잘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뭔가 일거리를 가지고 나와야 되지 않겠느냐?"는 내 말에

남편은 늘

"걱정일랑 하지마라. 나는 멋지게 놀면서 잘 살테니."

 

퇴직을 하고 육개월은 참 바쁘고 즐겁게 살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놀기 좋아하는 사람 제대로 놀면서 잘 사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한 시름 놓았지요.

 

 

 

 

 그런데 육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사람이 조금씩 이상해지더라고요.

 

담배를 피우는 횟수는 잦아지고

얼굴은 점점 어두워지고

외출하는 일도 차츰 줄어들더라고요.

 

그 즈음에 집에서도 딱히 하는 일도 없이

내가 하는 일에 신경을 쓰며 간섭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생활비를 아껴 쓰지 않네

백화점 출입이 잦네.....'

 

평생 가족들 먹여살리느라 애썼으니 좀 참아줘도 되겠는데

그 게 또 잘 안되는 게 사람인 모양이네요

저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요.

 

젊어서부터 풍덩웅덩 쓰지는 못하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지 않고 살던 습관이 아니라서

연금과 건물에서 나오는 세를 합해도 이전의 월급을 탈 때의 생활비만큼은 되지 않으니

더 불안한 모양이더라고요.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일년을 맞이하는 즈음에

우리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전문직 종사자도 아니고 지방에서 공무원을 하다가 퇴직을 한 사람이라

따로 오라는 이전만한 일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낮춰보자고 서로 말은 하였지만

'이런 곳은 몸이 힘들어 안되고

저런 곳은 남보기가 안좋아서 안되고....'

이래저래 갈곳이 없었지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고향에서 두 달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전화로 들려오는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기분이 즐겁고 활기차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이번에 내려가서 보니 표정이 그렇게 밝아졌을 수가 없었어요.

 

모든 게 불만이고 주변 사람들이 하는 소리는 듣기 싫어하던 사람이

누가 뭔 말을 하던지 크게 문제 삼지도 허허허 웃어 넘깁니다.

저도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거기에 더해 보너스까지 받았으니 더 기분이 좋지요.

며칠 전에는 월급을 탔다고 어머님 20만원, 저에게 10만원,

함께 내려간 막내에게 5만원을  봉투에 넣어 주었어요.

 

그렇게 하는 그이의 표정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지요.

저도 남편이 직장 다닐 때 주던 몇 백만원의 월급보다

백 만원 남짓한 돈이 그렇게 크고 고맙게 느껴질 수가 없네요.

 

 

 

 

특히 어머님께 밥 해주시느라 수고하셨다고 드린 돈은

어머님의 얼굴의 주름을 확 줄어들게할 정도로 크게 웃으시게 하였지요.

팔순을 넘긴 어머님 보시기에는

아직 젊은 아들이 할 일 없이 집에 있는 게 많이 안쓰러우셨던 모양이거든요.

 

 

 

 

이제 새로운 일을 해 본 남편은 일의 즐거움을 느낀 모양입니다.

이 일이 끝나고도 또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말합니다.

다시 제2의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우리남편

모쪼록 점점 더 밝고 건강한 모습이길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