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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싸한 마늘 냄새와 정으로 가득한 추억의 장터

렌즈로 보는 세상 2012. 8. 8. 08:08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말복인 어제 의성재래시장을 다녀왔다.

의성재래시장,

지붕을 깔끔하게 덮어 놓아 비바람과 눈을 가려주는 신식 시장이 되었지만

아직도 내 어릴 적 보던 장터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서 추억에 젖을 수 있었다.

 

의성장은 2일과 7일에 장이 서는 오일장이다.

평소에는 어머님이 살고 계시는 집에서 장터가 멀지 않아

대문을 나서면 바로 장꾼들이 차려놓은 노점상이 보인다.

그런데 오늘은 집에서 한참을 걸어가도  노점상들이 보이지 않고

시장 입구까지 가니 몇몇의 노점상들이 보인다.

아마도 유난히 더운 날씨와 농번기가 이런 장터의 모습을 만든 모양이다.

 

 

 

시장의 초입에 있는 옹기전.

내가 처음 시집 왔을 때만해도 이 옹기전은 크고 작은 장독들로 가득했는데

30 년이 지난 지금은 한 퀴퉁이를 다른 가게로 내어줄 만큼 크기도 줄었고 항아리들도 듬성듬성 놓여있다.

이런 모습을 하고라도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의성장이 재래시장의 모습을 잃지 않게 하는 것 같아 반갑다.

 

 

옹기전을 지나면 바로 나오는 뻥튀기 점방

너무 더운 날이라 곡식을 가지고 튀우러 오는 사람도 없으니 기계도 쉬고 있다.

아마 가을바람 시원하게 불어오면

추석에 오는 손자 손녀들의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

여름에 말린 옥수수를 등에 지고 오시는 허리 굽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심심찮게 이 가게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시골의 오일장답게 할베를 따라 장에 온 어린이들.

내 어릴 적 어매 치맛자락 붙잡고 따라갔던 때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아이스케키 하나 얻어 먹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던 .....

 

 

고향마을에서 직접 꺽어 온 옥수수를

가마솥에 삶아서 파는 이런 모습을 의성장이 아니면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이렇게 무더운 여름 저녁 무렵이면 방학을 한 우리들은 들에 가신 어른들 대신 감자를 긁어 가마솥에 삶을 때

그 위에 이렇게 옥수수도 함께 삶았었다.

 그때 방금 꺽어 온 옥수수를 삶았을 때의 그 달작지근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의성과 안동지방의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돔베기(상어)는 여름철이라고 어물전에서 빠질 수가 없다.

 

 

어물전을 지나 마늘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남선옥.

맛있는 숯불구이 고깃집으로 유명한 남선옥은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없고

어제 저녁 늦게 다녀간 손님들을 위해 수고한 석쇠를 씻느라 사장님은 정신 없이 바쁘시다.

 

 

남선옥을 돌아 찾아간 마늘전에는  재래시장의 천막 지붕 아래서

아침햇살에 빛나는 마늘들이 쉬고 있다.

 

 

전국 최고의 마늘 생산지답게 마늘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마늘전.

올해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썩은 마늘이 별로 없어 손질해놓은 마늘이 깨끗하다.

이렇게 많은 알싸하고 싱싱한 의성마늘이 겨울 김장을 시작하기 전에 전국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마늘가게 안에는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도 아랑곳없이

지난 초여름에 농가에서 거둬들인 마늘 작업을 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젊어서부터 이런 손놀림으로 아이들 뒷바라지한 어머니들,

이제 연세들어 쉴만도  하지만

하던 일이라 일손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은 철에는 이렇게 다시 일터로 나오신단다.

 

 

얼마나 더운 날이면 이렇게 신도 신지 않고 일을 하실까?

비슷한 크기의 마늘끼리 50 개씩 한 묶음을 묶어

다시  두 개를 함께 묶어 한 접이 된다.

 

 

 

마늘 선별작업을 일터에서는 '다마수리' 라고 한다.

100 개씩 묶은 한 접짜리 마늘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마늘전을 돌아나오는 길에 만난 어르신들.

의성 점곡에서 장을 오셨다는 이분들은

새로 지은 장터 시멘트 바닥에 걸터 앉아 술을 마신다.

젊은 아저씨 왈

"한복 입은 할베는 올 해 연세가 100이시더 며느리가 이렇게 한복을 곱게 손질해주니더.

우리동네라 그런 며느리가 있제.. 도시에서는 찾을 수도 없제요?

이렇게 장에 나와서 술을 마시는 게 장에 오는 재미아이껴?"

 

 

두 분은 술안주로 쑥떡을 드신다.

아마 새벽같이 집을 나설 때 아침을 드셨으니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출출해진 배를 쑥떡으로 요기도 하고 안주도 하기 위해서일 것 같다.

예전 우리 아버지도 저렇게 장판에서 술을 드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듯 들었다.

 

 

제대로 된 안주로 술을 드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두 어른들을 뒤로하고 나오는 길.

아직도 되를 사용하는 모습이 왠지 푸근하고 넉넉해보인다.

도시의 가게에서 이미 그램을 달아서 비닐봉지에 넣어놓고 정찰제로 가격을 받는 것보다 얼마나 더 후덕해 보이는가!

엿기름을 아직 봉지에 넣지 않았으니 한 웅큼 더 달라고 흥정도 할 수 있고 말이다.

 

 

읍내 변두리에서 텃밭을 하시는 할머니

손수 키운  채소들을 가지고 나와 장구경도 하고 푼돈도 모은다.

 

 

의성장에는 아직도 대장간이 있다.

호미나 괭이, 쇠스랑같은 농기구나 연장들이 이 대장간에서 시퍼렇게 날이 선 모습으로 주인을 기다린다.

 

 

올여름 유난히 더운 날씨에 대장간의 불이 꺼진지 한참이란다.

겨울이나 봄에는 찾아 온 손님들로 가득찼던 의자들도 주인 없이 쉬고 있다. 

 

 

아직도 이렇게 포장이 안된 빨래비누를 팔고 있다니!

옛날 이런 비누를 사면 누런 밀가루포대 자른 것에 싸주던 모습을

엄마의 치맛자락 너머로 보고는 처음인 것 같다.

 

 

참 귀한 놈이 시장에 나왔다.

이놈을 사가지고 가는 사람은 뭘 할려고 사가는지 통 짐작이 가지 않는다.

 

 

신기한 녀석을 보고 있는데 향긋하고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냄새를 따라가니 석쇠에 뭔가를 굽는 사람들이 보이는 골목이다.

여기가 바로 의성장에서 유명한 닭밝구이 골목인 모양이다.

 

숯불도 아니고 연탄불에 굽는 닭발과 목살 구이

그향기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아침을 먹은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입안에는 침이 가득 고인다.

 

 

닭발구이 골목의 권씨 할머니.

" 내가 이장사를 시작한지 벌써 40 년이 넘었어요.

우리는 마늘은 의성 육 쪽 마늘을 쓰고요.

고추가루는 풍산 우리친정에서  1 년 먹을 걸 사다놓고 필요할 때 마다 빻아서 써요.

우리양념으로 버무려서 3 일간 숙성을 시켜 가주고 나오니

장날이면 우리집을 찾는 단골이 한 둘이 아니래요.

한 절음 먹어봐.맛이 어떤가?"

 

 

할머니가 잘라 주시는 닭발구이를 먹어보니 내가 전에 먹어봤던 맛과는 차원이 다르다.

메콤하면서 쫄깃쫄깃하고 또 달작지근한 게 마늘 냄새도 솔솔나고

나는 솔직히 닭발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 그 생각이 바뀔 것 같다.

날이 좀 선선해지면 할머니네 집에서  닭발구이에 동동주 한 잔을  남편과 함께 꼭 먹어야 겠다.

 

 

할머니의 아드님은 장날이면 당신이 하는 일을 잠시 뒤로 미루고 할머니 일을 돕는다.

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서 너무 보기 좋았다.

이렇게 일하면서 어머님의 손맛을 전수 받았으면 좋겠다.

훗날에도 의성장에서 이 닭발구이 골목이 사라지지 않도록 말이다.

 

 

 

장에만 나오면 이곳에서 닭발구이를 드신다는 어르신 부부.

"의성처럼 닭발구이가 맛있는 데는 한 번도 못 봤어요.

걸음 걸을 수 있으면 장날마다 나와 먹어야 하제요."

라고 하시면서 술 대신 사이다로 목을 축이시고 연신 고기를 집어드신다.

 

 

나도 어른들처럼 같은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안계에서 오셨다는 할머니와 분토에서 오셨다는  할머니는 장터 친구가 된지 한참이라며

오늘도 장사를 하시는 틈틈이 막걸리 한 잔을 나누신다.

술을 마시는 분토에서 오신 할머니는

" 내가 이제 돈 벌어 뭐하니껴?

내몸 움직거려 키운 채소들 가지고 나와 팔아가지고 이렇게 친구와 술이라도 한 잔 먹고

생돈 안쓰고 필요한 것 사가지고 가는 재미로 살제요."

 

'맞다. 이래서 오일장은 적적한 노인들에게 생활의 활력소가 되겠구나!

누가 그분들에게 그런 활력을 줄 것인가!

그들의 자식들?

어림도 없다 .

내가 움직여서 내 멋대로 하는 것 보다 더 즐거운 것은 없을테니 말이다.'

 

 

 

사진을 다 찍고 시장을 돌아나오는데 아까 술을 드시던 할머니께서 부르신다.

"사진 찍느라 애 먹는데 이 강냉이 한 자루 먹어보소.

내가 키워가지고 아침에 삶아와서 참 맛있니더."

 

애써 아직 배가 부르다고 사양을 했다.

할머니의 행복한 막걸리 한 잔을 지켜드리고 싶어서다.

 

 

 

훗날 할매가 사주시던 흰고무신을 추억할 수 있는 의성재래시장.

오래도록 마늘 냄새 알싸하고 정으로 가득한 장터이길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