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석탑을 보러 의성읍에서 안평으로 가는 길
고개를 거의 다 내려갈 무렵
왼쪽으로 들어가는 길에
문화재가 있는 절이 있다는 표지판이 보였지만
그날은 시간이 없어 찾지 못하다가
며칠 전에 어떤 문화재가 있는지 궁금하여 다녀왔다.
그렇게 찾아간 천등산 꼭대기의
산 아지랑이(嵐)가 구름(雲)으로 피어오른다는
아름다운 이름의 절 운람사(雲嵐寺).
보물 1646호인 초조본
<불설가섭부불반열반경(佛說迦葉赴佛般涅槃經).
부처님의 제자인 마하가섭보살이 열반에 든 부처님을 찾아간다는 경전>은
불교박물관으로 가고 없고
보광전의 아미타 목조 여래좌상과
신라말이나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의젓한 3층 석탑이 우리를 반긴다.
거기에 더하여 절 이름과 너무도 어울리는
발 아래 펼쳐진 첩첩이 둘러친 산들이 큰 가슴으로 우리를 반긴다.
운람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드니
옷 벗은 나목들의 아름다운 모습 속에 유난히 빨간 게 눈에 띈다.
감이다.
모두 따고 달랑 두 개만 남겨놓은 까치밥이다.
절집답게 모두 따지 않고 남겨놓았다는 게
운람사의 모습을 말해주는 것 같아 발걸음도 가볍게 절로 올라간다.
운람사는 천등산에서도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는데다
높다란 석축 위에 올라앉아 있다.
그래서 절에 오는 사람에게 선뜻 그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일주문도 거치지 않는 절이니 마음을 가다듬으라는 뜻일 게다.
석축을 올라가 본다.
투명한 이른 겨울 오후의 햇살에 탑을 가운데 품은 절집이 고즈넉하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 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인 운람사는 천등산 정상 바로 아래 자리하고 있다.
통일 신라 신문왕(682-692) 때 의상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운람사가 위치한 지형의 형국이 구름 가운데 반달이 솟은 형상이라
산 아지랑이가 구름으로 피어오른다는 뜻으로 운람사라 이름을 지었단다.
운람사의 건물들을 바라보고 뒤로 돌아서본다.
어느 불자가 깍아세운 애처로운 솟대 너머로
첩첩이 둘러친 산 병풍이 장관이다.
이러니 운람사란 절 이름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란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다.
운람사의 법당인 보광전
이 전각안에 있는 주불인 아미타 여래좌상에서
복장유물(腹藏.배속에 넣어둔 유물)이 발견되었다.
보광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조선전기에 조성 된 것으로 보이는 이 불상은
하반신에 비하여 상반신이 길고도 튼실하다.
이 부처님의 복장에서는 나온
불설가섭부불반열반경(佛說迦葉赴佛般涅槃經)은
보물 제1646호로 지정되었고
함께 나온 복장유물 27종 165점도
이 부처님과 함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28호로 지정되었단다.
그런 유물들을 안고 오랜 세월 견뎌오신
부처님이 참 대견스럽다.
운람사 보광전 앞에 있는 3층석탑.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탑은
탑리 오층석탑에 비해 웅장한 맛은 없지만
이찌 낀 모습으로 발 아래 펼쳐진
산들을 굽어보고 있는 자태가 의젓해서 좋다.
탑 옆에 있느 스님의 처소.
이른 겨울 오후 햇살에 탑의 상륜부의 그림자가
건물에 비친 모습이 한적한 산사의 스님을
지켜줄 것 같아 보여서 흐뭇하다.
산속의 추위가 얼마나 매서울까?
올 겨울을 지켜줄 털신이 포근하다.
보광전과 스님의 처소 사이에 있는 작은 산왕각도 다정하다.
저 작은 건물이 없었다면 뒤에
새로 지은 삼성각이 너무 도두라졌을 텐데 정말 다행이다.
운람사에 올라 수도가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허리를 편 길손이라면 멀리 산을 바라보면서
걸어온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볼 것 같다.
운람사의 가장 위에 있는 전각인 삼성각 앞에서 바라본 풍경
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안개 휘감아 도는 날이나
구름 산허리를 감싸는 날이면
절의 이름과 너무나 조화로운 풍경에 가슴이 먹먹해질 것 같은 풍경이다.
운람사에는 150 년이나 된 모과나무가 있다.
우뚝솟은 높은 키 때문에 머리에는 아직도 열매를 그대로 이고 있다.
그 모습이 겨울이 되어도 너무나 정겨울 것 같아서 좋고
요사채 마루에서 햇살 받아 달콤해져가는 감도 정겹다.
운람사는 아직도 군불 지피는 방이 많다.
높은 산 속의 작은 절집이니
기름이나 전기로 방을 데울 정도로
경제가 넉넉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날 저무는 운람사.
지개를 지고 나무를 져나르는 사람이 정겨운 절 운람사
그곳의 군불 지핀 방에서 하룻밤을 꼭 묶어보고 싶다.
운람사의 요사채
초겨울 오후 햇살 따사로운 날에 찾은 운람사.
천등산이라는 산 이름에 걸맞게
산을 구비구비 돌아 올라간 길도 아름답고
날 맑은 날이라 금성산도 팔공산도 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산 아지랑이 구름으로 피어나는 봄날에 다시 찾아서
절집과도,
석탑과도,
아미타불과도 진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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