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추억의 그림자

제기를 닦으며....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2. 9. 10:52


 

 

어제는 제기를 닦았습니다.

매번 맞이하는 추석이나 설 명절이면 제기를 닦아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입니다.

제사 음식을 차릴 때도 물기가 있는 전이나 산적은 제기 위에다 흰종이를 깔고 음식을 담고 하는지라

매번 닦기에는 제기가 너무 깨끗하고

그렇다고 닦지 않고 하기에는 밤이나 대추를 담은 제기들은 그 자국이 그냥 남아있는 게 있어서 조상님들께 죄송스럽다.

그렇다고 매번 닦기에는 너무 힘이 들어서 2, 3년에 한번씩 닦습니다.

 

 

그릇을 닦기 전에 먼저 그릇을 닦는 약품과 장갑, 수세미와 흰천, 바닥에 깔 헌 포대를 준비합니다.

 

 그릇을 닦는 일은 많은 때먼지가 나오는 일이기 때문에 먼저 주방 바닥에 헌 포대를 깔고 시작합니다.

예전의 멍석을 이 포대가 대신합니다.

예전에는 깨진 기왓장을 가루로 만들어서 볏집에 묻혀서 그릇을 닦았지만 지금은 그릇 닦는 약품을 수세미에 묻혀서 닦습니다.

 

"언제 다 딱을 란 동 겁이 나니더"

라고 내가 말하니

"야야 다리 아프게 디딜방아를 찧지 않는 것도 편코

약품으로 닦으이 힘이 반밖에 않드이 얼매나 편한 동 옛날 대면 할 것도 없다."

라고 하시는 어머님 말씀에

어릴 적 깨진 기왓장 빻은 가루를 볏짚에 묻혀서 그릇을 닦아 본 기억이 있는 저도 공감이 가긴 합니다.

 

 

 

처음에는 약품을 수세미에  묻혀서  닦아 묵은 때를 벗겨냅니다.

이 때 너무 센 수세미로 닦아도 그릇이 깍여나가기 때문에 적당한 세기의 수세미로 닦아야합니다.

 

 

 

닦다가 심하게 때가 낀 부분은 칼로 긁어내기도 하지만 잘 벗겨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머님의 손길은 멈추지 않습니다.

 

 

 

문지르고 긁어내어 때를 다 닦아내면 면으로 된 광목이나 수건으로 약품을 닦아내면서 반질반질하게 윤을 냅니다.

 

 

 

그렇게 힘을 들여 십 분쯤을  닦으면 요런 반질반질하게 광이 나는 모사그릇으로 재탄생합니다.

모사그릇(모래를 곱게 체 쳐서 2/3 정도 담고 솔잎을 깨끗이 다듬어서  모래 가운데에 꽂는 그릇입니다.

제사 때에 향탁 왼쪽 아래에 놓고 제사 시작 때에 강신주(降神酒)를 붓는 그릇입니다.)

요렇게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그릇에 강신주를 부으면 조상님들이 즐겁게 오실 것 같습니다.

 

 

 

닦은 제기와 닦지 않은 제기의 차이가 보이지요?

사람이 목욕하여 때 빼고 광낸 것과 너무도 비슷하지요.

이러니 힘이 들어도 닦지 않을 수 없네요.

 

 

 

어머님과 제가 열심히 한 시간쯤을 닦았더니 이제 반 정도를 닦았습니다.

하나하나 광채가 나는 보람에 힘든 줄도 모르고 닦습니다.

 

 

 

우리 고부가 열심히 제기를 닦는 옆에서 남편도 거듭니다.

닦고 나서 물로 씻지 않는 향로나 모사그릇, 촛대를 깨끗한 걸레로 닦습니다.

 

 

 

오래되어 촛대의 연결부분이 느슨해져  흔들거리는 것을 없애주기 위해 실로 빈 곳을 채워줍니다.

 

향로를 윤이 나게 닦고 촛대를 손질하는 정성스런 모습에서 조상을 섬기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래서 그릇을 닦을 때 되도록이면 남자들도 함께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열심히 닦아보지만 어머님의 솜씨를 따라가지는 못하겠습니다.

팔순도 중반을 바라보는 연세이신 어머님은 정말 잘 닦습니다.

이런 일도 경험치가 쌓여야 더 잘하는 것 같습니다.

 

 

 

 

이왕 닦는 김에 이제는 쓰지도 않고 장식품으로 변한  놋대야와  화로도 닦습니다.

 

세 시간쯤을 열심히 했더니만 그릇도 다 닦아 가고 약품도 다 써 갑니다.

살림의 고수인 어머님의 눈썰미가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약품을 딱맞게 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 이런 부분은 발 벗고 나서도 어머님을 따라가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제기 닦는 일을 끝낸

너덜너덜해진 수세미와 흰색이었던 천과 때묻은 장갑입니다.

우리와 함께 수고한 이것들은 이제 버려질 것입니다.

 

 

 

그렇게 닦고 윤을 낸 제기들은 세제를 묻혀 다시 한 번 닦아 물로 깨끗하게 씻어냅니다.

 

 

 

그렇게 물로 씻어 낸 다음에는 물기를 바로 닦아냅니다.

그래야 그릇에 얼룩이 지지 않거든요.

 

 

 

반나절을 우리가족이 수고한 덕에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제기들은 바라보기만해도 기분이 좋고 아름답습니다.

 

씻어서 말려 놓은 예쁜  제기를 보면서 어머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야야 니대 까지는 제기 딱아가면서 제사를 지내제만

다음에는 누가 할 사람이 있을 란 동 모를따.

그 때는 이 그릇들은 다 우옐라는 동...."

 

 아무리 놋그릇의 장점(미네랄 방출. 해충 소독과 제거. 농약, 나쁜공기에 반응. 보온, 보냉 효과. 살균. 소독)이 많다지만

아이들에게 놋제기를 쓰라고 강요할 수 는 없다는 건 어머님도 아시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 깨어진 기왓장을 디딜방아에 찧어 가루로 만들어서 닦던 시절에 비하면 훨씬 쉬워졌지만

일회용 그릇을 쓰는 데 익숙한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놋제기 닦아가면서 제사를 지낼 지 저도 걱정은 됩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제사는 자손들이 조상들이 그리워서 추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것도 없는데 의무적으로 지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아들이 아직은 미혼이라 제사에 대한 별다른 생각은 없고 우리를 따라 지내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사는 남자의 몫만 아니라고 봅니다

그집 안주인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가정의 화목은 첫번째도 두번째도 부부간의 화합이라는 생각에

앞으로 아들이 결혼을 하고 우리가 죽더라도 제사를 모시고 안모시는 것은 아들 내외에게 맡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