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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노트 10.1 달랑 하나 들고 찾아간 고산서원에서 느끼는 한국의 미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2. 18. 08:30

 

 

긴 겨울의 춥던 날씨가 모처럼 푸근한 주말

갤럭시 노트 10.1 달랑  하나 들고 찾아간 고산서원.

갤록시 노트 10.1로 찍을 수 있는 한계는 있었지만

안동의 유서 깊은  서원을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느끼고 와서 좋았습니다.

 

 

 

구불구불 구부러진 길따라 올라가는 고산서원 길.

길 건너 아름드리 소나무 너머로 보이는 고산서원의 건물들이 보인다.

 

 

 

서원 앞의 송림 사이에 듬성듬성 놓여진 돌들.

 

이 돌들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된 루의 초석으로 보고 있다. 

오른 쪽 작은 문이 향도문으로  서원의 정문이나 지금은 주로 주사가 있는 쪽의 옆문을 사용하고 있다.

 

 

 

관리사인 주사

몇 년 전만해도 허술한 살림집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고택체험을 하는 고산서원이라 깔끔하게 정비되었다.

 

 

 

'고산서원'이란 현판이 붙어있는 서원의 중심 건물인 강당 호인당(好人堂).

고산서원은 경북 기념물 제56호이다.

 

유학의 고장 안동에는 많은 서원들이 있고

그 중심에 퇴계 이황선생이 후학들을 가르치고 사후에 배향하는 도산서원과

서애 류성룡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사후에  배향하는 병산서원이 있다.

나는 여기에 더하여 대산 이상정선생을 기리는 고산서원을 그 옆자리 쯤에 넣어 보고  싶다.

고산서원은 모시는 대산선생의 학문도 훌륭할 뿐만 아니라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진 서원의 풍광 또한 빼어나기 때문이다.

 

 

 

호인당에서 바라 본 동재와 서재

 

 

고산서원은 조선후기 영남학파의 큰 봉우리로 퇴계학문을 계승발전시킨

대산 이상정을 기리고 제사지네는 곳이다.

선생이 돌아가신 18년 뒤인 정조 13년(1789) 후학들이 선생을 기리기 위해

대산선생이 살아생전에 제자들을 가르치던 고산정사옆에

지금의 건물들을 지었으나 대원군 때 훼철 되었다가

1977년, 1984.1985년에 다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부분의 서원건물 배치가 그러하듯이 

이곳도 전학후묘(앞에는 가르치는 곳이고 뒤에는 사당)의 배치를 하고 있답니다. 

정문인 향도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강당인 호인당이 마주보이고

오른쪽에 동재인 앙지재가 있고 왼쪽에 서재인 부언재가 있다.

서재에는 유물전시각인 백승각이 있다.

 

 

 

앙지재 편액이 붙어있는 동재가 겨울 햇살에 따스하다. 

동,서재에는 개방된 마루가 있어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되어있다.

 

 

 

강당 건물을 돌아 뒤쪽에 선생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인 경행사가 있고

그 오른쪽에 제수를 보관하던 전사청이 있다.

 

 

사당인 경행사 담의 조각이 예술이다.

돌도 개어진 기왓장도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없다.

선조들의 미적 감각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 보아도 감탄스럽다.

 

 

 

나는 고산서원에 오면 서원도 좋지만

서원 마당에서 고산정사로 내려가는 이길이 너무 좋다.

길지는 않지만 조형적인 돌담을  돌아가는 길이 예전 고향의 어느 길모퉁이 같아서이다.

 

고산정사 너머로 아름다운 돌산인 자암산과

여름에는 보트장으로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유명한 미천이 있어 고산서원은 더 아름답다.

 

 

대산 이상정선생이 생전에 제자들을 가르치던 고산정사.

오랫만에 찾았더니 무너져 내리던 건물을 복원하여 말끔하다.

퇴계선생의 학문을 이어주는 허리같은 역활을 했던 대산선생은

생전에 반듯한 선비의 모습으로 유명하다.

이 작은 공간에서 그 정신과 학문을 후대에 전했다니.....

 

 

 

고산정사에서 올려다 본 고산서원.

기와를 이고 있는 돌담의 선들이 너무도 아름답다.

 

 

푸근하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잔설이 남아있는 겨울 한낮에 찾은 고산정사.

대산선생의 자취도 느낄 수 있어 좋지만 우리 고건축의 아름다움과

주변의 풍광의 아름다움이  있어서 자주 찾고 싶어지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