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진이야기

시를 찍는 사진가 마리오 쟈코멜리(Mario Giacomelli)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2. 25. 05:58

 

 

 

'마리오 쟈코멜리(Mario Giacomelli, 1925-2000, 이탈리아)'

라는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 작가지만

눈밭에서 춤추는 수사들을 담은

흑백의 강렬한 콘트라스트의 사진은

너무 강하게 뇌리에 남아있었다.

그런 사진이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전문미술관인

한미미술관에서 지난해 11월 24일부터 전시를 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려오는데도

이번 겨울은 지방에서 많이 보내다보니

전시회의 마지막 날에야 

그 강렬한 흑백대비의 사진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간 시간이 점심시간대였는데도

아름다운 조형미와 흑백의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었다.

 

 

한미사진미술관은 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이탈리아 사진가 마리오 쟈코멜리(Mario Giacomelli, 1925~2000)의

국내 첫 회고전

THE BLACK IS WAITING FOR THE WHITE

(어둠은 빛을 기다린다2012.11.24~2013.02.24)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쟈코멜리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국내 첫 전시인 만큼

그의 사진 활동 전반을 아우르는 대표작 220여 점을 비롯해 생전의 출판물은 물론,

미술관의 쟈코멜리 소장품까지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번 전시는 쟈코멜리의 아들이자

쟈코멜리의 고향에서 아카이브를 지키고 있는

시모네 쟈코멜리(Simone Giacomelli, 1968~ )와

밀라노 소재 사진전문기관인

포르마(Fondazione FORMA per la Fotografia)와의

공동 주관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전시는 모두 18개의 파트로 분류되어 전시되었다.

1953년에 카메라를 구입한 초기작업에서부터

생의 마지막 작업인 '이 기억을 이야기하고 싶다.'까지

어느 한 분야도 눈 설게 느껴지지 않은 아름다운 사진들이다.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세니갈리아에서 태어난 자코멜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쇄소 식자공으로 일하며

타이포그래피와 인쇄의 매력에 빠졌다.

이후 어머니가 근무하던 요양병원의 할머니가

물려준 유산 덕분에 인쇄소를 차리면서

카메라를 구입, 사진을 접하게 됐다.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인쇄소를 운영하면서도 사진기는 놓지 않았다.

이러한 사진가로서 성장 배경은

전문적인 사진 교육을 받지않고

사진을 시작한 그의 사진 작업 세계가

어떤 예술사조 혹은 기술적 화법에 편승하지 않고

독창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시 쓰기를 좋아한 그는

시에서 영감을 받거나 시구를 가져와 작품 제목으로 썼다.

춤추는 사제들을 다룬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는

시인이자 수필가인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1916~1992) 신부의 시집에서 따왔다.
'죽음이 찾아와 너의 눈을 앗아가리라'라는 작품은

1983년까지 그 병원을 드나들면서 작업한 것이다.

제목은 이탈리아의 시인

체자레 파베제(1908~1950)의 시에서 빌려 왔다.

 

 


 

  Io non ho mani che mi accarezzino il volto

(I have no hands caressing my face.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

50×40cm, 1961~1963

 

 

1960년 젊은 사진가 마리오 자코멜리(1925~2000)는

가톨릭 신학교의 젊은 수사들을 찍을 수 있는 허락을 받았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드는 장면을 찍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좀처럼 눈이 오지 않는

세니갈리아 신학교에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쟈코멜리는 망설임 없이 신학교로 달려갔다.

테라스에 숨어서 눈 구경을 나온 사제들에게 눈뭉치를 던지자

사제들이 눈장난을 시작했고,

그 덕분에 춤추는 수도사를 찍을 수 있었다.

 

시와 달리 쟈코멜리의 사진에 등장하는 수사들에겐

구도의 길을 걷는 성직자들의 고민과 두려움이 보이지 않고

수함과 상쾌함이 느껴진다.

훗날 자코멜리는

“두려움을 지닌 수사들의 모습은 마음속 필름에만 담았다”

고 고백한다. 사진가의 따뜻한 배려가 느껴진다.

젊은 수사들을 다룬 일련의 작품은

그의 사진 인생에서 가장 유명한 이미지로 남게 된다.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는

쟈코멜리의 다른 작업에서 보는 것처럼

매우 강렬한 대비(콘트라스트)가 두드러진다.

눈밭이란 배경이 자코멜리에겐

하얀 물감 구실을 해서 검정 수사복을 더 강조할 수 있었다.

자코멜리는 암실작업에서도

그만의 개성을 위해 어떤 부분을 더 ‘태우거나 가려서’,

곧 빛을 더 줘서 더 검게 만들거나

빛을 차단해 더 희게 만들어서,

강한 대비를 한 번 더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흰색은 강렬하다 못해 빛처럼 보이고

검정 속엔 조금의 회색조차도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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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의 '스카노(Scanno)'

연작이 흑백 대비를 보여준 대표작이다.

흰색의 대리석 건축물에서

검은색 전통복식을 입고 살아가는

이탈리아의 스카노라는 마을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자연에 대한 깨달음' ,

'대지의 이야기' ,

'나비의 느린 여행' 등 많은 풍경사진을 보여줬다.

그에게 풍경은 인간의 삶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생명체였다.

그는 풍경사진에서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시도하기도 했다.

암실에서 흑과 백을 반전시켜

검은 하늘과 하얀 산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농부들에게 흙 위에 기호를 그려달라고 부탁해 촬영하기도 했다.

 

 

 

'The Black Is Waiting For The White' 사진집

전시에서 공개하지 않은 시리즈 등

총 20개의 시리즈를 포함하고 사진가 강운구의 글과

작가의 아들 시모네 쟈코멜리가 쓴 글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시를 사랑했던 쟈코멜리는 시에서 영감을 받거나,

시처럼 읽히는 사진을 찍길 즐겼다.

말년에는

"그것은 그것이었을 뿐이었다."

는 말로 이같은 표현조차도 덧없는 것이라고 되뇌긴 했지만,

그는 일평생 시를 암송했고

그의 몸에서 그 시들이 우러나와,

사진 속에 켜켜이 이입된 작품을 남겼다.

 

그는 특히 어머니가 일하던 병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가장 좋아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슬픔이 있는 그곳에서

생의 부조리함과 외로움, 절망을 본 자코멜리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아름다운 조형미가 있지만

공포와 슬픔이 베어있다.

그런 점이 사람들의 뇌리에

그의 사진을 각인 시키는 묘한 매력이다.

 

그의 사진은 '흑(黑)'과 '백(白)'으로 요약된다.

평생 찍은 사진작품의 95% 이상이 흑백이다.

거기에 더해 흑백의 틀이다.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이고 언젠가는 할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