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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던 소래염전의 소금 생산과정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6. 28. 09:57

 

소래습지생태공원에는  일제강점기 염전이 조성된 후 1970년대까지 전국 최대 천일염 생산지로 이름을 떨쳤던 소래염전이 옛날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네모반듯한 소금밭이 길게 펼쳐진 소래염전.

멀리서 보면 모두 같은 모양새지만 결정지 밑에 깔린 재료에 따라 토판(흙), 옹패판(항아리), 타일판(타일)로 나눌 수 있어 소금 제조법의 변천사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바람과 햇빛이 만들어낸 작품 소금 생산과정을 알아봅니다.

 

 

 

소래습지생태공원 전시장 옥상에서 바라본 염전 중 마지막 결정지역입니다.

결정지역 너머로 나무로 지은 소금창고도 보입니다.

네모반듯한 소금밭이 모두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영도도 모두 다르고 바닥의 재료에 따라 소금판의 이름도 다릅니다.

저기 허리 구부린 아저씨는 소금판과 소금판 사이에 있는 통로 물막이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저 통로로 염도가 다른 물이 흘러갑니다.

소금판 사이에 지붕이 덮여있는 곳이 해주(우기에 25도의 염수를 보관하는 곳)인 것 같습니다.

 

 

 

소금은 세 번의 증발 과정을 거쳐 결정체를 수확합니다.

 

 

 

왼쪽 물레방아처럼 생긴 것이 저수지에서 소금밭으로 물을 퍼 올리는 수차랍니다.

소래염전은 전시장 오른쪽에서부터 물을 증발시켜서 왼쪽으로 가면 염도가 점점 높아지고 마지막에 소금창고 가까운 곳에서 소금을 채취합니다.

 

 

 

마지막 소금을 채취하는 곳의 바닥에 깐 재료에  따라 소금판의 이름도 다릅니다.

토판

1955년 이전에 사용하던 결정지역(소금판)입니다.

옛날 소금판은 현재와 같은 타일이 깔려 있지 않아 소금에 갯벌이 섞여 검은색을 띄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채취된 소금을 토판염이라고 한답니다.

미네랄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고 하여 고가에 매매되고 있으며 아직도 일부지역에서 토판염을 생산하는 곳이 있습니다.

 

 

 

옹패판

이 옹패판은 1955 ~1980 초까지 시용하던 소금판으로

타일판이 널리 이용되기 전에 항아리 등 옹기 깨진 것으로 바닥을 만들어 깨끗한 소금과 소금 모으기를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결정지역 바닥에 깔아 사용하였습니다. 

 

 

  

 

타일판

1980년 대 초 이후 ~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소금판입니다.

갯벌의 흡착력을 이용하여 정사각형의 타일을 염판(개흙)위에 올려놓은 상태입니다.

 타일판은 옹패판에 비해 표면이 매끄러워 소금 채취 작업이 쉽고, 검은색 타일은 태양열 흡수량이 빠르고 많아 염도를 높이는데 큰 효과가 있습니다.

 

 

 

 

소금밭을 지나 풍차가 있는 곳으로 가다보면 옛날에 쓰던 타일판을 볼 수 있습니다.

일부러 이런 수차모형을 넣어 소금판을 만든 윗대 어른들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우기에 소금으로 결정할 수 있는 염수(25도)를 보관하던 해주 지붕

 

 

 

소래염전.

소금채취작업(조선닷컴, 소래습지생태공원 복사)

몇 번의 증발 과정을 거치고 나서 결정체로 굳어지면 소금을 채취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힘이 들겠지만 햇살 좋은 날이면 좋겠지요.

소금판에 있던 소금을 밀대로 긁어모아 물기가 빠졌다 싶으면 소금창고에 보관합니다.

 

 

 

 

염전에서 채취해서 소금창고에 보관 중인 소금

소금창고는 안과 밖이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있어서 천일염을 보관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인 것 같습니다.

 

 

어릴 적 거뭇거뭇한 소금을 먹어보면 그 맛이 달작지근하고 맛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맛이 토판에서 만들어낸 미네랄 풍부한 소금이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 소금의 맛을 요사이는 느껴보질 못했습니다.

모든 소금이 깨끗하고 보기는 좋은데 말입니다.

소래염전에 가면 늘 그 소금 맛이 혀끝에 느껴지고는 합니다만

이제 다시는 그런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난 날 최고의 소금 생산지로 이름을 날리던 소래염전은 이제는 거의 모든 소금판이 타일로 되어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