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전시

대중의 새발견 - 누가 대중을 상상하는가?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7. 5. 06:40

 

7월 14일까지 무료로 관람 할 수 있는

'대중의 새발견 - 누가 대중을 상상하는가?'

전은 어떻게 대중과 미술이 만나고, 새로운 형식과 표현으로 소통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예술 영역을 일상까지 넓힌 팝아트뿐 아니라 신진에서 중진까지 작가 25명의 회화, 조각, 사진, 설치 퍼포먼스를 두루 짚은 전시다.


 

예술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않고 자란 이 사람은

 감성적 공감에 익숙한 사람이라

정교한 이론과 논리로 이루어진 현대예술을 접할 때면 언제나 답답함을 느낀다.

예술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구 서울역사의 <문화역서울 284> 에서 마주한

'대중의 새발견 - 누가 대중을 상상하는가?' 전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런 작품들을 마주할 때면 머리 아픈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싶다.

그러나 어차피 이 작품들도 현대인들이 만든 것이고, 나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인데 어쩌랴

우리문화를 함께 느끼면서 살아가야지.'

라는 생각이 들어 어슬렁거리며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돌면서 본 작품들 중 눈에 들어왔던 몇 작품을 '대중' 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함께 올린다.

어려운 공부를 한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강영민 작가의 '열기구'

미술을 흔히 고급언어라고 한다.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을 시각언어로 표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는 걸 간과하기 쉽다. 말이나 글로 표현해보고 그 한계를 느껴봐야 표현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필요성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이건 개인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사회는 고급언어에 대한 소중함을 알만큼 충분히 말해주지 않고 있다.

고흐와 테오가 , 마네와 보들레르가 , 구본웅과 이상이, 백남준과 케이지가 현대에 있다면 트위를 주고받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그들이 그림을 안 그리고, 시를 쓰지 않고, 음악을 만들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죠?

예술가는 해가 진 후에야 눈을 뜨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아니다.

우리는 사건을 일으키는 예술가가 너무 낯설다. 그들을 지난 세기에는 전위라고 했다죠. 아마

 

 

 

 

김태진 작가의 '이태원의 사나이'

이탸원의 역사 지리적 맥락에 영감을 받아 진행한 퍼포먼스 작업이다.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도시의 지정학적 구조가 인간의 기억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무력을 가진 자의 오만함과 전쟁의 폭력성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나약함, 전쟁의 폐허에 대한 기억과 그 폐허 속에서 부활하는 싸구려 문화의 유희성 등,

 모순된 역사의 단면들이 상반된 채로 어우러져 기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윤현선 작가의 'Matrix series'

시간이 지나면 썩어버리는 음식을 조형적인 형태로 만들어 촬영한 이미지와 여러 가지 다양한 이미지의 합성으로 썩지 않는 사진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다.

배가 불러도 음식을 먹고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에서 작업은 시작 된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꿈인지 현실인지, 진실인지 허구인지, 헤게모니 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작가 스스로의 모습을 말하는 것에서 시작 되었다.

음식은 필요한 것을 필요 이상의 욕심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였다.

오랜 시간 먹거리는 권력을 집중시키기도 하고 삶을 영위하기 위해 전쟁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죽음과 섹스를 만들기도 하는 음식에 관계된 인간의 행위는 삶 자체일 것이다.

음식은 삶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며 기초적인 에너지인 동시에 욕심의 표현이다.

욕구와 본능에 내 자신의 정체성과 본질마저 잃어버리고 돼지가 되는 악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낸시랭 작가의 작품

한국 팝아트 씬에서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를 시도해 보고 싶었던 작가는 이 전시에서 가장 고전적인 기법인 정통유화를 통해 팝아트적인 그림을 완성하려 한 것이다.

세계의 유명한 댜통령이나 기업인 들의 어깨에 낸시랭의 트레이드마크이자 분신인낸시랭얹어놓은 그림은 그들 모두를 '낸시랭화' 시켜버린다.

이 작품들은 초상화적인 구도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배경을 오버된 빛나는 후광으로 처리하여 전체적으로 신격화시킨 화면구성처럼 보인다.

그런 면에서 진지한 형식의 작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특유의 귀여운 코코샤넬이 어깨에 올라가 있어 위트와 웃음을 자아낸다.

작가는 이렇게 컨트라스트 기법을 즐기며 대중들의 의식화된 '그들의 고정된 이미지'를 벗어나 '그들의 자연인으로서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김지훈 작가의 '사건과 아우라' (자신의 피를 뽑아서 그린 그림)

내 작품은 어떤 사건을 일으키는 발생원이다.

이 사건은 문제적이고 논란의 소지가 많으며 윤리적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한다.

트리스탄 짜라와 마르셀 뒤상과 같은 다다이스트나 트레이시 에민이나 데미안 허스트와 같은 YBA(Young British Artist)가 선행했듯,

작가는 위험부담을 안더라고 사건을 작품의 수단으로 간주하며, 사건을 매게로 작품은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으로 교묘히 이용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사건을 이용하여 작품을 조작하는 것이다.

내게 작품이란 완성된 미술품을 뜻하지 않는다.

작품은 아우라에 관한 것이고 그것이 놓이고 보이는 상황 자체이다. 

 

 

 

 

최현주 작가의 '동상이몽'

나는 내 작업에 일반인들이 참여하기를 유도했고 카메라 뒤에서 많은 타협을 하였다.

그러한 노력 끝에 나는 그들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예술에 참여한 의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유료로 그들을 예술에 참여시키게 되었다.

창동 지역주민들과 새터민들을 직원으로 채용하여 작가가 간단히 채색한 캔버스 위에 자유로이 인형 눈알을 붙이게 한다.

직원은 눈알의 크기, 수량, 배치 등을 자신의 마음대로 캔버스에 붙인다.

그러면 작가는 1알에 10원씩을 지금하고 이로써 공적 지원금은 노동을 통해 분배된다.

 

 

 

 

전미래 작가의 '롤링시티'

도시를 이루는 각기 다른 형태의 단순화 된 건물 구조물 밑에 바퀴가 달려 있어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움직이도록 한 것이다.

관객의 참여에 의해 작품이 작동되고, 완성된다.

도시를 이루는 것들이 잘 짜인 구성과 배치라 한다면 이번 작품은 그렇게 구조화된 질서로 이루어진, 다시 말해 계획과 통제에 다름 아닌 기존의 공간 논리를 흐트러뜨리고 교란시킨다.

불특정 다수의 우발적인 참여를 통해, 이미 정해지고 고정된 공간 배치의 논리를 뒤바꾸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배치는 권력화 되고 제도화 된 공간화의 논리라 할 수 있는데,

이번 작품은 매번 불특정한 관객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길을 따라 이미 구조화 된 배치를 다르게 바꾸어 간다는 면에서 각별하다.

사람들의 개입 혹은 그 감각적 실행에 의해 도시의 새로운 길들이 형성되는 것이고, 그렇게 사람들의 손길이나 접촉에 의해 도시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정해진 공간화의 논리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가로지르고,

예기치 않은 우연성에 의해 또 다른 공간들이 만들어진다는 사실, 아니 그렇게 우리들 스스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을 인식하는 예술가의 관점은 긍정과 부정, 제각각이다. 그래서 보고 나면 답보다 많은 질문이 남는다.

나에게 대중이란 무엇일까도 생각해 본다.

나에게 대중이란? 선거유세에 몰린 군중이나 민주화를 열망하는 무리로 대변된다.

늘 나는 그 대중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나도 우리사회의 대중 중의 한 사람인데 말이다.

 

 

 

예술가들이 만든 대중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 길, 서울역 광장에는 또 다른 대중들로 북적인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체계 개선 △정년연장 △원하청 불공정 거래 근절 △비정규직 정규직화 △단체협약 효력확장

등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