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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의 삶의 흔적과 <토지>를 만나 볼 수 있는 박경리문학의 집

렌즈로 보는 세상 2013. 7. 25. 06:53

 

 

원래의 대지, 본질적인 땅이란 의미로 해석되는 <原州>에 사셨던 박경리 선생은

"내가 원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산천을 사랑한다는 얘기다."

라고 말씀하셨다.

땅을 사랑해서 텃밭 일구기를 좋아하시고, <토지>를 쓰셨던  분이니 원주에 사셨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선생을 기리는 공간이자 흔적을 느끼는 공간인 원주 박경리문학공원의 중심은 아무래도 박경리문학의 집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의 유품 및 유작 전시를 통해 삶의 흔적과 선생의 대표작 <토지>를 깊이 있게 만나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박경리문학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서면 바로 만날 수 있는 박경리문학의 집은 선생이 사셨던 옛집과는 다른 5층의 현대식 건물입니다.

1층은 사무공간이고.

2~3층은 전시실, 4층은 자료실, 5층은 세미나실로 되어있습니다.

 

 

 

계단을 올라 2층 전시실로 들어서니 소박한 꽃이 놓인 안내데스크가 보입니다.

투박한 작은 항아리에 담긴 마당에서 방금 꺾어다 꽂은 것 같은 꽃에서 선생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낮에는 밭을 일구고 저녁에는 작은 조명 아래서 글을 쓰시는 선생의 모습이 이 꽃처럼 소박하지 않았을까요?

 

 

안내데스크 앞에서 주춤거리는데

자리에 앉아계시던 여성분이  일어서면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십니다.

"5층에서 부터 내려오시면서 보시면 더 편안하게 보실 수 있으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셔서 보시면 좋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말 잘 듣는 이사람 얼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서 세미나실을 잠시 둘러보고 아래층으로 내려왔습니다.

 

 

 

4층 자료실은 2~3층 전시공간에서 접하지 못한 박경리 선생의 삶과 작품을 연구하는 공간입니다.

청소년 토지학교와 어린이 토지학교인 <동화 토지학교> 가 이곳에서 있다고 합니다.

청소년이나 어린이들이 토지를 읽고 <토지> 속의 시대배경인 일제 강점기의 참혹한 역사의 과정을 새롭게 배우고 깨닫고 나누는 시간을 통해

우리 민초들의 다양한 삶과 문화를 이해하고 나아가 민족의 독립의지를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4자료실에서 만날 수 있는 선생의 작품들.

1955년 초기의 단편에서 부터 <토지>는 물론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까지 모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초기 작품집에서 느껴지는 오래된 책의 느낌과 시대별  책 표지의 변화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지요. 

 

 

 

 

4층을 둘러보고 3층 전시실로 내려오는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선생의 집필 모습이다.

늦은 밤, 작은 불빛 아래서 글을 쓸 때도  단정하게 한복을 입고 쓰는 모습의 단아한 자태가 너무나 아름답다. 

늘 시간만 나면 누워서 책을 읽는 사람이라 잠시 반성을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왔습니다.

 

 

 

 

3층은 <토지>를 만나는 공간입니다.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의 모습에서 부터 5부작인 <토지>의 각 부별  줄거리

펼쳐놓은 책 중간 중간에서 만나게 되는 내용들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이곳에서의 토지는 책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글과 함께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이 있어 이해하기도 좋습니다.

특히 그림으로 보는 인물관계도는 토지의 등장인물의 관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참 편리하여 좋습니다.

서희를 중심으로 연결된 인물들의 관계도가 소설의 내용만큼이나 복잡하기도 합니다.

 

 

 

각 부별 설명에는 소설의 무대를 사진으로 보여주어서 더 이해하기 좋습니다.

그것도 아름다운 이미지라 더 보기 좋습니다.

 

 

 

 

새로운 방법으로 만난 <토지>에 빠졌다가 나온 복도에서 만난 사마천의 글은 남편과 아들을 잃고 오직 글쓰기에만 매달렸던 선생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몇 줄의 블로그 글도 쓰기가 힘든데

저런 대작을 쓴 선생은 얼마나 많은 밤들을 글과 씨름을 했을까 싶습니다.

 

 

 

 

3층이 <토지>라는 대작을 통해 선생의 작품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2층은 선생의 삶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육필 원고는 물론이고 쓰시던 안경 만년필 등이 있는 책상 위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습은

원고지에 돋보기를 쓰고 만년필로 사그락 사그락 글을 써내려가는 소리가 들이는 것 같은 풍경입니다.

 

 

 

평생 바느질과 틀일을 하시기 좋아하셨던 선생이 쓰시던 재봉틀과 부속품들.

손 때 묻은 틀과 부속품이 든 주머니에 정이 갑니다.

예전 우리 어매가 저 싱거 틀로 우리의 옷을 만들어주셨던 것과 같이 선생은 따님에게도 당신의 옷도 직접 만들어 입으셨답니다.

 

 

 

 

쓰시던 두꺼운 사전과  돋보기에도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짧은 글을 쓰는 데도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데 <토지> 같은 대작을 쓰자면 얼마나 많은 단어들을 찾아야 했을까요?

많이 써서 책장이 부푼 모습에서도 역작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1926. 10. 28 경남 충무에서 태어나셔서   2008. 5. 5 강원 원주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82년의 성상을 살아오신 선생의 삶의 흔적들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가족사진에서처럼 단란한 모습의 가족의 모습으로 사셨다면 선생의 주옥같은 글들이 탄생했을까 싶은 생각을 잠시 했던 공간입니다.     

 

 

 

 

글로서 우리문학계의 별이 된 여성 박경리 선생

이제 그 푸근한 미소를 다시 볼 수는 없지만 이런 문학의 집이 있으니 기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선생의 훌륭한 대작 <토지>가 다시 읽고 싶어지는 곳 박경리 문학의 집

그곳이 있어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박경리문학공원 홈페이지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http://www.tojipark.com/main.php 

 

 

 

 

 

컴퓨터 고장으로 인해 이틀간 글도 올리지 못하고 여러 이웃분들도 방문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봄부터 찍은 사진은 다 날라갔지만 다시 시작해야지요.

다행스럽게도 이  사진은 예비포스팅을 해 놓은 상태라 글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없는 방을 찾아주신 이웃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