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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의 흔적이 남아있는 봉평장

렌즈로 보는 세상 2014. 8. 18. 06:22

 

 

 

강원도 평창군 봉평을 몇 번이나 갔지만 정작 봉평장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기도 한 봉평장을

메밀음식을 으러 가던 길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는 봉평장은

물론 옛날 허생원이 장을 보러 다니던 그 때의 모습은 아니겠지요.

 

 

 

 

막바지 여름 휴가철인 지난 주 평일인 12일에

봉평초등학교 운동장에 차를 세우고 장터로 향했다.

운동장에는 많은 차들이 세워져있었지만

정작 장터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메밀 음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한 모양이다.

 

 

 

 

시장 초입에는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이 연출되어있다.

이 장면이 있게 한 '메밀꽃 필 무렵' 을 되새기고 장 구경을 가야겠다.

 

 

메밀꽃 필 무렵 - 이효석

 

봉평장의 파장 무렵, 왼손잡이인 허생원은 장사가 시원치 않아서 속이 상한다.

정선달에 이끌려 충주집을 찾는다. 거기서 나이가 어린 장돌뱅이 '동이'를 만난다.

허생원은 대낮부터 충주집과 짓거리를 벌이는 '동이'가 몹시 밉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 계집하고 농탕질이냐고 따귀를 올린다.

'동이'는 별 반항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물러난다. 허생원은 마음이 좀 개운치 않다.

 

조선달과 술잔을 주고받고 하는데 '동이'가 황급히 달려온다.

나귀가 밧줄을 끊고 야단이라는 것이다.

허생원은 자기를 외면할 줄로 알았던 '동이'가 그런 기별까지 하자

여간 기특하지가 않다. 나귀에 짐을 싣고 다음 장터로 떠나는데,

마침 그들이 가는 길가에는 달빛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달빛 아래 펼쳐지는 메밀꽃의 정경에 감정이 동했음인지 허생원은 조선달에게

몇번이나 들려준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한때 경기가 좋아 한밑천 두둑히 잡은 적이 있었다.

그것을 노름판에서 다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는 평생 여자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 메밀꽃이 핀 여름밤, 그날 그는 토방이 무더워 목욕을 하러 개울가로 갔다.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성서방네 처녀를 만났다.

성서방네는 파산을 한 터여서 처녀는 신세한탄을 하며 눈물을 보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허생원은 처녀와 관계를 맺었고, 그 다음날 처녀는 빚쟁이를 피해서

줄행랑을 놓는 가족과 함께 떠나고 말았다.

 

그런 이야기 끝에 허생원은 '동이'가 편모만 모시고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발을 헛디딘 허생원은 나귀의 등에서 떨어져 물에 빠지고 그걸 '동이'가 부축해서 업어준다.

허생원은 마음에 짐작되는 데가 있어 '동이'에게 물어보니

그 어머니의 고향 역시 봉평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어둠속에서도 '동이'가 자기처럼 왼손잡이임을 눈여겨본다.

<중략>

 

 

 

 

장터의 모습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 모습이 아니지만

그곳에서 파는 물건들은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때 묻은 백자 항아리며 닳고 녹슨 놋그릇은

허생원이 술을 마시던 충주집에서도 쓰던 그릇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마루에서 낮잠을 잘 때 필수인 저 동그란 베개에는

틀림없이 메밀껍질로 만든 속이 들어있으리라.

메밀껍질을 넣은 베개 속만큼 시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메밀의 고장답게 메밀로 만든 식품들이 많다.

구수한 메밀국수를 만들어 먹기 위해

메밀가루 한 봉지를 사가지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사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 지금도 후회된다.

 

 

 

 

산 깊고 물 맑은 봉평에서 난 산나물은 보약보다 더 나을 것 같다.

 

 

 

 

이 더덕은 횡성에서 난 것이라는데 아주 먹음직스럽다.

횡성이나 평창 어느 곳이라도 산 깊은 곳이라

만약에 재배한 것이라도 야생 못지않을 것 같다.

 

 

 

 

옥수수도 옥수수지만 반짝반짝하는 가마솥이 시선을 끈다. 

저런 솥에서 삶아낸 옥수수의 맛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내가 자란 경상도 지방에서는 주로 찹쌀이나 수수로 조청을 만들었었던 것 같은데

옥수수 조청은 처음 본다.

이렇게 조청을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도 처음이다.

귀한 먹거리를 살 수 있는 봉평장은 역시 특별하다.

 

 

 

 

표고버섯을 버섯만 파는 것은 흔하지만

이렇게 종균이 들어있는 걸 함께 파는 것도 처음 본다.

이 비닐에 들어있는 것을 사다 물만 주면

버섯을 따먹을 수 있다니 신기하기 그지없다.

아이들 교육용으로도 좋겠다.

 

 

 

 

시골장터 장꾼들의 양심도 옛날 허생원이 살 던 시절의 양심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손글씨로 원산지를 써 놓은 양심이 얼른 한 봉지 사고 싶게 한다.

그래서 메밀쌀 한 봉지를 사가지고 왔다.

 

 

 

 

 

시골장터의 노점상이라 믿기지 않을 깔끔한 점포가 기분이 좋다.

 

 

 

 

봉평장에는 참 귀한 것들도 많다.

꽃송이버섯은 듣지도 못했으니 보기도 물론 처음이다.

이런 예쁜 버섯을 먹으면 건강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예뻐질 것 같다.

 

 

 

 

옛날 어머니가 집에서 만들어주던 두부모처럼 큰 두부.

가운데의 검은콩 두부 한 모를 사다가 먹었더니

맛도 옛날 맛 그대로이다.

옛날방식 그대로 만든다는 두부

허생원도 이 두부를 안주삼아 술을 마셨을지도 모르겠다.

 

 

 

 

꼬치와 어묵, 떡볶이를 앞에 놓고 마주앉은 가족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봉평장은 외지인들이 많은 시장이다.

 

 

 

야생 황기 한 묶음을 사가지고 환하게 웃는 동생댁이다.

집에서 키우는 닭으로 백숙을 만들어 먹을 때 넣으려고 산답니다.

이런 황기를 사가지고 오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나요.

 

 

 

 

 

장터의 분위기는 깔끔하지만

그곳에서 파는 물건들은 아직

'메밀꽃 필 무렵'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많은 봉평장이다.

다음에 그곳에 가면 수수조청이나 메밀가루,

비닐봉지에 원산지를 꼼꼼하게 쓴 잡곡을 한 보따리 사가지고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