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추억의 그림자

추억을 잇다

렌즈로 보는 세상 2014. 1. 6. 08:54

 

 

어머님이 퇴원을 하시고 우리 집에 오신지 2주일이 되었네요.

처음에 오셔서는 메주를 쑤고 아버님 제사를 지내고 하는 걸 도와주시다가 보니 

무료하다는 느낌을 느끼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할 일을 다 하고 나니

"아이고 하루가 참 길다."

라고 무료해하십니다.

그렇겠지요.

편찮으실 때는 빨리 나으셔야 한다는 일념에 그런 감정이 없으셨겠지만

이제 불편하신 곳이 전혀 없으시니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어머님 집에 계셨으면 하루 종일 경로당에 가셔서

친구분들과 화투도 치시고 윷놀이도 하시다가

저녁에야 집에 오셔서 주무시고  이튿날 아침 한 술 드시면 또 경로당에 가셨으니까요.

 

 

 

 

 

 

그래서 어머님과 함께 할 일거리를 찾아내서 요 며칠을 둘이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 동생네 집에 갔을 때 동생이 명주에 천연염색을 해서 누비를 한 자투리와 조각을

"작품을 만들 틈이 없네. 이 아까운 걸 어예노? 언니 가지고 가서 뭐라도 만들어 볼래?"

라고 하기에 아까워서 얼른 한 상자 얻어왔습니다.

그 천으로 카펫을 만들어 보자며 어머님과 함께 조각을 이었다가 붙였다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은 젊으셨을 때 틀일이나 바느질을 해보셔서

조각을 잇는 것에는 조금 능력이 있으시다고 생각해서 일거리를 찾아내기는 했습니다만 만만하지 않네요.

홑으로 된 천이 아니라 솜을 놓아 누빈 천이라 꾸깃꾸깃한 것을 다리미로 다리고

조각을 잇기 전에는 솔피의 솜을 뜯어내야 하기 때문이지요.

처음에는 이음새 부분에 솜을 뜯어내는 것도 모르고 그냥 했더니

이음새 부분이 투박해서 바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더라고요.

 

 

 

 

 

 

 

한 조각을 잇고 나면 다림질을 하고 또 한 조각을 잇고 나면 다림질을 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하루해가 언제 지는 줄 모르겠네요.

바느질을 처음해보는 저와 조각보를 붙여 본지도 까마득한 어머님은

뜯었다가 붙였다가를 반복하니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갑니다.

처음에는 낮에만 하는 것도 벅찼지만 차츰 일을 하는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아침을 먹고 시작해서 밤 늦은 시간까지 우리들의 일은 계속됩니다.

어머님이 틀일을 하시면 제가 이음새 부분을 만지거나 조각을 이을 구도를 생각하고

제가 틀일을 하면 어머님이 그 일을 대신합니다.

때로는 일을 하는 방법이 서로의 의견에 맞지 않아서

서로 자기 의견이 옳다고 티격태격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우리의 분업은 철저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붙였다가 뜯었다가를 반복하지만 우리들의 작품의 수준을 영 형편없네요.

천을 준 동생이 보면 천 아깝다고 입을 삐죽거렸을 정도로 말입니다..

우리는 제대로 한다고 했는데도 어느 모티브 하나 반듯하게 붙여진 것이 없습니다.

삐뚤빼뚤, 울룩불룩,

초보자인 제 눈에도 누가 볼까봐 부끄러울 정도입니다만

그래도 조각을 이은 크기가 커질수록 마음은 뿌듯해지네요.

 

 

 

 

그렇게 힘들었지만 모양은 별로인 우리들의 작품은 이제 거의 완성 단계입니다.

앞면을 이어붙이는 것은 마무리하고 이제 뒷면 붙이기만 남았습니다.

처음 카페트를 만들려는 계획은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천도 모자라고 솜씨도 엉망이라 크게 만들어도

거실 바닥에 떡하니 펴놓고 바라보기에는 좀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지요.

모양새는 썩 좋지는 않지만 홋이불이 되든지,

 외손녀의 이불이 되든지,

작은 카펫이 되든지,

그래도 마무리는 해야겠어요.

어머님과 저의 협업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 된 것이니

훗날 추억을 되새기는 물건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