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경기도 둘러보기

산을 오르며.....

렌즈로 보는 세상 2014. 2. 19. 07:42

 

 

푹푹해진 날씨에 집에 있기만 답답해서 뒷산을 올랐습니다.

크게 높지도 이름이 난 산도 아닌 우리 어릴 적 보던 그렇고 그런 마을 뒷산입니다. 

어릴 적 보던 이맘때의 동네 뒷산은 '갈비'라고 부르던 소나무 낙엽도 하나 없이 깔끔하게 쓸어놓은 것 같았습니다.

또 썩어 나자빠진 아름드리나무들도 눈 씻고 찾아보아도 없던  맑고 깨끗한 산이었는데

지금의 산은 온통 낙엽 수북하게 쌓이고 부러지고 넘어진 나무들로 가득합니다.

50 년도 안 된 세월에 변해도 너무 변한 우리네 삶의 환경에 대해서 생각하며 산을 오른 날이었습니다.

 

 

 

 

날씨가 푹해진 그저께 뒷산을 올랐지요.

아직 윗동네로 가는 길가에는 잔설이 남아있지만 그 길을 웅크리고 빨리 걸을 필요는 없습니다.

등산지팡이 하나 짚고 느긋하게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오르는 기분은 상쾌합니다.

이런 공기 좋은 곳에 사는 게 행복해지는 순간입니다.

 

 

 

 

한참을 걸어올라 산 중턱 쯤에 있는 전원주택을 지나고 포장된 길은 끝이 났습니다.

어디로 가야할까 망설이는데 낙엽 수북하게 쌓인 산에 사람의 흔적이 살짝 보이는 길이 보입니다.

얼른 그 길을 따라 올라가봅니다.

 

 

 

 

어! 그런데 그 길의 끝에는 가족묘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사람이 흔적이 있었던 길은 이 가족묘의 후손들이었단 말이잖아요.

그럼 어디로 가야하나 망설이다가 이왕 산을 오르기로 했으니 하늘이 보이는 곳으로 올라가야하지 않을까 싶어 위쪽으로 올라가기로 하고 계속 올라갑니다.

 

 

 

 

사람이 다닌 흔적은 없지만 짐승들의 발자취가 보이는 곳을 따라 올라갑니다.

그 산은 발에 차이는 것이 밤송이입니다.

밤송이 속에는 아직 밤이 남아있는 것으로 봐서는 가을에 누가 주워가지 않은 모양입니다.

올가을에는 가마니로 밤을 주울 수 있겠다는 농담을 하면서 벌써 밤 가마니 속에 쌓인 모습을 그려봅니다.

 

 

 

 

참나무 낙엽 수북한 하늘이 보이는 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데 부러진 나무가 보입니다.

마치 옛날 우리 동네 아저씨들이 산토끼 같은 산짐승들을 잡는 목로(올가미)를 만들어 두었던 모습과 흡사한 것 같습니다.

저런 부러진 나무에 의지하여 목로를 놓았던 것 같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용도가 아니고 그저 썩은 나무가 부러진 것 같습니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산토끼를 잡은 날은 온 동네 잔칫날이었습니다.

동네 아저씨들이 사랑방에 모여 술을 한 잔 나누며 화투판이라도 벌이는  날이었지요.

 

 

 

 

산 능선을 오르니 사람이 다닌 흔적이 보입니다.

그래서 그 흔적을 따라 걷습니다.

그곳에도 낙엽이 지천입니다.

특히 고급 땔감에 속하던 소나무 낙엽 '갈비'가 수북한 것은 아깝기까지 합니다.

어릴 적 산골마을은 겨울이면 집집마다 일 년 동안 땔 나무를 해다가 나무가리를 만들었습니다.

겨울에 부지런히 나무를 모으지 않으면 일 년 동안 군불을 지피고 밥을 해먹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농한기이고 낙엽 수북한 겨울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그렇게 겨울을 나고 이맘 때 쯤에는 산 바닥은 빗자루로 쓸어놓은 것 같이 깔끔했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낙엽이 퇴비가 되고 있습니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만난 것 중 아까운 것은 낙엽뿐만이 아닙니다.

장작으로 쓸 만한 아름드리나무가 쓰러진 것도 한 두 그루가 아닙니다.

어릴 적 그렇게 귀한 몸이었던 나무가 이렇게 버려져 있습니다.

동료들의 거름으로 다시 태어나겠지만 땔감으로 나무를 쓰던 시절을 살아온 사람이라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멀리 양평의 추읍산과 개군면, 건너편에 금사리가 보이는 뒷산,

산이 너무 우거져서 어느 부부인 것 같은 사람들이 달아둔 안내표지가 없었다면 길을 잃을 뻔했지만 맑은 공기를 실컷 마실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한 어릴 적을 추억할 수 있어서도 좋았습니다.

너무도 편리해지고 살기 좋아졌지만 산에 지천인 나무를 보면서 옛날 나무를 해서 군불 지피던 그 때가 그리운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때는 어서 나이 먹고 싶은 철없을 때였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