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전원생활

나눠먹는 재미에 젓고 또 저었습니다.

렌즈로 보는 세상 2014. 8. 27. 06:01

 

집 주변이 온통 참나무로 둘러 쌓여있다 싶은 곳에 사는 사람이라

올 가을이 기대되기는 했습니다만 이렇게 풍성할 줄은 몰랐네요.

며칠 전 비 내린 후에 뒷동네까지 산책을 하러 집 뒤를 막 돌아가자 

길가에 도토리가 지천으로 떨어져있었지요.

비를 맞아서 퉁퉁 불어 터진 것도 있었지만

잠깐 주웠더니 금새 한 바구니가 되었지요.

소복소복 주워담는 재미가 얼마나 달콤하던지요.

그렇게 이틀 정도를 주워 도토리묵을 쒔습니다.

가족과 친구들과 나눠 먹는 즐거움에 팔이 아픈 줄도 모르고

나무주걱으로 가마솥에 묵을 저었네요.

이런 환경이 아니면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지요.

내가 조금 힘이 들면 주변 사람들이 너무나 즐거워하는 

나눔이 있는 전원생활

이런 가을은 이제 시작입니다.

 

 

 

대문만 벗어나면 바로 도토리를 주울 수 있지요.

비가 와서 불어터진 것은 그냥 칼로 껍질을 벗기

맑은 날에 주운 것은 까는 도구를 사용해서 벗겼지요.

남편도 열심히 함께 껍질을 벗겼지요.

예전 남편이 직장에 다닐 적 같으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요.

함께 일을 하며 마주 않으니 자연스럽게 아이들 이야기며

친구들 이야기를 두런 두런 나누게 되어 너무 좋았지요.

 

 

 

 

 

아직 가을의 초입인데도 알이 얼마나 토실토실하게 영글었던지

금방 한 다라이가 되었지요.

그렇게 껍질을 벗긴 도토리를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씻어냅니다.

 

 

 

 

 

씻어낸 도토리를 믹서기에 갈았지요.

방앗간을 가도 차를 가지고 가야하는 곳이라

"조금씩 해먹는 것은 집에서 믹서기로 갈아서 만들어 먹는다."

는 친구의 말을 듣고 이번에 새로 구입했지요.

필립스 제품인데 갈아보니 참 편리하네요.

물론 살 때는 성능이 좋다는 것도 알긴 알았지만

솔직히 세련된 디자인과 가벼운 블렌더 용기 때문이었지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것처럼

보기 좋은 믹서기가 역시 성능도 좋았지요.

특히 블렌더 용기가 유리가 아니라 스테인리스라 가벼워서 좋았지요.

 

 

 

 

믹서기로 드르륵 드르륵 몇 번을 갈고 걸러내기를 반복하였지요.

방앗간에서 갈아와 하는 것보다는 좀 번거로웠지만

그래도 지난번에 작은 믹서기로 하는 것보다는 많이 편리했지요.

그렇게 간 것을 소쿠리에 일차로 걸러낸 것을

얇은 샤로 만든 주머니로 다시 한 번 더 걸러내었지요.

그렇게 걸러낸 도토리액을 5시간마다 물을 갈아가면서 하룻밤을 재우고 나서

윗물을 따라 내고 묵을 쒔지요.

 

 

 

 

가마솥에 묵을 쑬 때는 윗물 따라 낸 것은 전부 버리지 말고 남겨두면 좋더라고요.

묵을 쑤다가 보면 물이 적어 묵이 덩어리가 지면 그 윗물을 부어주면 되거든요.

쉴 새 없이 저어야 하는 것이 묵을 쑤는 과정이라

우리는 아침 7시에 묵을 쑤었답니다.

그래도 뜨거운 불이 있는 솥에서 하는 일이라

마지막에는 힘이 들어서

얼굴에서는 구슬 같은 땀이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그렇게 땀을 흘리며 남편은 불을 지피고

저는 젓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묵은 걸쭉해지고.

가운데까지 폭폭 끓어오를 때 얼른 몇 개의 그릇에 퍼 담았지요.

그렇게 두 솥을 끓인 것을 차에 싣고는 어제 서울을 다녀왔지요.

묵을 좋아하는 사위도 갖다주고,

도토리 음식은 없어서 못 먹는다는 시누이와

귀염둥이 막내딸,

그리고 남편 친구와 제 친구네 집을 돌면서 나눠주는 재미에 푹 빠졌지요.

자칫 무료하기 쉬운 전원생활에서

이런 즐거움은 생활의 활력이 되었지요.

 

 

 

 

 

모두 다 돌려주고 남은 한 모는

오늘 형부네 과수원에 배 따러 갈 때 새참으로 가지고 가렵니다.

한 모도 채 먹지 못하는 우리는

솥과 푸는 바가지에 묻은 것만으로도 충분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