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옛날 옛날에

단 오

렌즈로 보는 세상 2007. 2. 10. 22:46

 


음력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시내에 살다보니

언제가 오월인지 단오 날이 언제인지 모르고 살았는데,

며칠 전 종가집 불천위제사 사진을 찍으러

서애 유성룡 선생님의 종가인 충효당에 갔을 때,

종부를 비롯한 음식을 만드는 문중의 아녀자들의 머리에

궁구이를 꽂고 있는 것을 보고서야 잊어버렸던 어릴 적 단오 날을 떠올렸다.


우리 어릴 적 단오 날은 얼마나 즐거웠던 날이었던가!
단오가 다가오면 우리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가슴 설레였던 것 같애.

 

단오가 가까워오면 어른들은 읍네에 가서

미역과 고등어 자반 한 손을 사오셔서 단오 날 아침이면

집에서 키우던 닭을 넣고 미역국을 끓이고

고등어찌개를 하여 밭에서 키운 채소를 곁들인 푸짐한 아침상을 준비하였다.

물론 그날의 밥은 제사 때나 먹어보던 쌀밥이었다.


            - - - 그 네 - - -


 그렇게 맛있는 이른 아침밥을 먹은 우리는

머리에는 악귀를 쫒아내고 머리결을 좋게한다는 궁구이를 꽂고,

학교 가기 전에 그네를 타기위해 느티나무에 가보면

전날 밤에 동네 일꾼들과 장정들이 볏짚을 거출하여

힘모아 만들어 놓은 그네를 만나게 된다. 


그네는 동민들이 모두 타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린이를 배려하거나 그런 것 없이

동네의 평균 연령에 맞게 그네줄도 만들어져있고

그네의 높이도 아이들이 타기에는 턱없이 높았다.

 

그러나 우리는 일 년에 한 번밖에 탈 수 없는 그네를

어떻게든 많이 탈려는 욕심에

 배걸이를 하여 그네에 오르는 불편이나

굵은 그네 줄을 잡느라 손에 물집이 생기거나에 상관없이

서로 많이 탈려는 쟁탈전을 벌이기도했다.


전날 비라도 내린 날은

그네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물방울 때문에

모처럼 깔끔하게 입었던 단오빔이 학교에 가서 폼도 내보지 못하고

물에 빠진 생쥐 몰골이 되기도 했다.

 

 어떤 날은 그네를 실컷 타보려고 부모님께 특별히 일찍 깨워 달라고 부탁해서

해도 뜨기 전에 그네에게로 가보지만

벌써 누군가가 그것에 걸터앉아 있을 때의 그 씁쓸함이란.


 그렇게 우리들의 사랑을 받던 그네는  

한 보름쯤을 그렇게 느티나무 가지에 매어져서 우리들의 애환을 지켜보다가

그네 쟁탈전으로 인한 아이들의 싸움이 어른들의 싸움으로 발전하게 되고

화가 난 어른들은 어느 날 저녁 그네 줄을 잘라버렸다.


그네 줄의  잘려진 부분의  낫 자국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받은 모습은 

여름날 더위를 피해 느티나무 그늘에 초석을 깔고

할일없이 빈둥거렸던 나에게는 몹시 슬퍼보였다.
           
    

     - - - 쑥 떡 - - -


  단오 날에 빼놓을 수 없던 먹거리는 쑥떡이었다.
수리치로 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해서 단오를 수릿날이라고도 한다지만

우리들이 어릴 적에는 쑥떡을 많이 만들어 먹었던 것 같다.  


 봄이 오면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이 쑥이지만

농사일이 바쁜 어른들은 이른 봄 어린쑥을 뜯어 쑥국을 끓여 먹은 뒤로는

그 흔한 쑥떡 한번도 해먹지 못하고 단오날은 돌아오게 된다.


어른들은 단오가 다가오면 들일 갔다 오는 길에 정갈한 논뚝이나 밭뚝에 있는

쑥의 윗부분 보드라운 것만 뚝뚝 꺽어서 다래끼에 넣어 집으로 가지고 와

깨끗이 다듬어 가마솥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미리 빻아둔 쌀가루와 반죽을 하여,

가마솥에 푹 쪄 디딜방아에 반죽이 잘 될 때까지 찧어

어린아이 머리만한 크기로 덩어리를 만들어 대나무 광주리에 담아,

삼베 보자기로 덮어 서늘한 마루 위 실겅에다 얹어놓고,

먹고 싶을 때마다 한 덩어리씩 내려 탁구공 만한 크기로 뭉쳐, 

곱게 빻아놓은 콩가루를 무쳐가며 둥글게 늘려서

보름달 같은 쑥떡을 만들어 먹었다.

 

모처럼 만들어 먹는 떡이라 양을 많이 해놓으면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라 보관이 어려워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고 하여도

하루 이틀이 지나고 사흘쯤 되면 곰팡이가 하얗게 피면

다시 가마솥에 쪄서 보관하곤 하였다

 

 다시 찌게 되면 쑥 향기도 약해지고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우리 남매는

엄마가 채반을 가지고 마루로 올라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떡 덩어리 속으로 손을 넣는 일을 얼마나 빨리 했던지.

그렇게 떡 덩어리 겉에 곰팡이가 피어도

떡 안쪽은 상하지 않았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

2004 . 6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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