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찍이도 사랑했대요.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대요.
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어요
.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지요.
450년 전 두사람이 나눈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오늘 저녁 우리 안동의 고택에서 안동의 배우들의 공연으로
그 사랑에 푹 빠져볼까요.
단양의 관기 두향은 매화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여인이었다네요
어느 봄날 열 여덟 살 두향은 관기인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며 두보의 시를 노래하네요
강은 끝없이 짙푸르고 꽃은 더욱 타는 듯 붉다
고운 이봄을 덧없이 그대로 보내고 나면
나는 언제 고향으로 돌아 갈 것인가 . . . . .
마흔 여덟의 퇴계선생은 관직에 나오라는 임금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집이 가까운 단양군수로 부임하고
두향은 첫눈에 퇴계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먹인 안동포처럼 뻤뻤했던 퇴계 선생은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따라 잃고 홀로 부임 하였으니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 같은 두향을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무르익어 가는데
그
퇴계선생은 풍기군수로 발령이 나고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에겐 커다란 충격이었어요
그러나 그들은 헤여져야하고,
두 사람의 9개월 간의 짧은 사랑은 이별의 시간을 맞이하는데
두 사람의 마지막 밤 . 퇴계선생은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라며
두향의 치마 폭에 석별의 글을 남기고
두향은 한 편의 시로 화답하였어요.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 날을 어이 할까 하노라
그렇게 그들은 기약없는 이별을 하고
두향은 관기에서 물러나 선생과 자주 갔던 남한강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대요.
한 편 퇴계선생은 두향이가 준 수석 두 점과 매화분을 가지고 단양을 떠났고,
이후 단양군수를 거치고,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를 역임하고 말년에 안동에 은거했지요.
안동 도산에 도산서당 짓고 후학들을 가르치면서도 두향이가 준 매화분을 애지중지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두향이 인편으로 선생께 난초를 보내니
두향이와 같이 기르던 것임을 알아본 선생은
밤 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튿 날 새벽에 일어나 자기가 마시던 우물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냈어요.
이 우물물을 받아든 두향은 차마 그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새벽마다 일어나 선생의 건강을 비는 정화수로 삼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 물이 핏빛으로 변하는 것을 본 두향은 선생께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느끼고
불길한 예감에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를 드리고 . . . .
며칠 전부터 시름시름 앓던 선생은 자기의 초췌한 모습을 매화에게 보이기 싫어서인지 매화분을 치우라고 했다가
바로 그 날. 두향에게 준 물이 핏빛으로 변한 그 날.
선생은 자기의 몸처럼 아끼던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나셨어요.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 간을 걸어서 도산에 도착하니
20여년 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두사람은
한 사람이 죽어서나 다시 만나는 인연이였나 봅니다.
그 후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어요.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지요.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에 그대로 피고 있답니다.
.
지금도 퇴계선생 종가에서는 매년 두향이의 묘를 벌초하고 그녀의 넋을 기린답니다.
이 공연을 위해 수고 하신 분들입니다.
마이크 들고 계신분이 프로듀서 김준환 . 퇴계 김상욱. 두향 전미경. 하인 김창숙. 무용 최미영. 스토리 텔러 유필기.
왼쪽의 여자분은 분장담당 이고요. 마지막 남자분은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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