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겨울에는 사진 찍을 게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추워서 집을 나서기도 어렵고
집을 나서도 아름다운 꽃이나 풍경도 없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겨울에는 길고 짙게 드리운 그림자가 있어
사진 찍는 게 너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마지막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난 주말 도덕산의 그림자들을 담아보았다.
그림자
정진명
허공에 한껏 부풀려진 제 영혼을 위하여
그림자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드러눕습니다.
모양과 부피가 각기 달라도
영혼의 두께는 다 같은 법이라고
모든 존재의 뒷모습을 납작하게 펼쳐놓습니다.
높이만을 최고로 알고 중력과 싸우느라 버둥거릴 때도
소리 없이 바닥으로 내려와
높을수록 커지는 위험을 길이로 재어줍니다.
알록달록한 꿈 자랑하며 휘날릴 때
화려한 빛깔들을 가장 단순한 색으로 바꿔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품는 쉼터가 되어 줍니다.
감당 못할 무슨 일로 풀죽은 저녁 무렵이면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며
지평선 끝까지 키를 늘이고 어깨 다독입니다.
해를 쳐다보는 동안에는 못 보지만
방향을 조금 돌리면 가까운 곳에서
해로 하여 가려진 세상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평생 곁에 머물러 날 지켜주다가
무덤에서 함께 사그라지는
당신, 내 영혼의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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