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좋은 글

영혼의 짝

렌즈로 보는 세상 2012. 3. 14. 09:40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겨울에는 사진 찍을 게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추워서 집을 나서기도 어렵고

집을 나서도 아름다운 꽃이나 풍경도 없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겨울에는 길고 짙게 드리운 그림자가 있어

사진 찍는 게 너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마지막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난 주말 도덕산의 그림자들을 담아보았다.

 

 

 

 

 

 

 

 

 

 

그림자

                 정진명

 

 

허공에 한껏 부풀려진 제 영혼을 위하여

그림자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드러눕습니다.

 

 

모양과 부피가 각기 달라도

영혼의 두께는 다 같은 법이라고

모든 존재의 뒷모습을 납작하게 펼쳐놓습니다.

 

높이만을 최고로 알고 중력과 싸우느라 버둥거릴 때도

소리 없이 바닥으로 내려와

높을수록 커지는 위험을 길이로 재어줍니다.

 

알록달록한 꿈 자랑하며 휘날릴 때

화려한 빛깔들을 가장 단순한 색으로 바꿔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품는 쉼터가 되어  줍니다.

 

감당 못할 무슨 일로 풀죽은 저녁 무렵이면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며

지평선 끝까지 키를 늘이고 어깨 다독입니다.

 

해를 쳐다보는 동안에는 못 보지만

방향을 조금 돌리면 가까운 곳에서

해로 하여 가려진 세상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평생 곁에 머물러 날 지켜주다가

무덤에서 함께 사그라지는

당신, 내 영혼의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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