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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술전시의 두드러진 특징은 고급 사진전시가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는 지금 ‘포스트 다큐멘터리 사진’의 리더인 마틴 파 회고전(30일까지·02-514-3983)과 포토저널리즘의 신화라 불리는 로버트 카파전(26일까지·02-514-3983)이 함께 열리고 있다. 성곡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윌리엄 웨그먼(7월 22일까지·02-737-7650)도 개를 모델로 쓰는 세계적인 사진가다. ‘명품 미술백화점’을 표방하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에서는 한국 현대사진의 대표적 작가인 주명덕의 회고전이 6월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 난해하지 않고 접근 쉬워… 감상 인구 많아
사진이 우리나라에서 독립된 예술장르로 전시를 하게 된 지는 20여년이 된다. 문화예술위원회가 발간한 문예연감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열린 미술전시 중 사진전시는 7%를 차지해 공예전(9.4%)이나 한국화전(8%)과 비슷하고 조각전(3.82%)보다는 훨씬 많았다. 미술관과 갤러리뿐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게 사진전시다. 환경재단은 ‘…움직이다’란 이름으로 서울 코엑스 앞 광장에서 대형 사진전시를 하고 있다.
# HP 등 기업들도 적극 후원
사진은 현대미술이면서도 난해하지 않다는 점을 두 번째 이유로 들 수 있다. “나는 미술에 문외한”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사진을 보는 것은 어려워하지 않는다. 서울아트선재센터에서 26일부터 하는 ‘거울신화-우리시대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진가들 이야기’(8월 15일까지·02-325-5583)는 강영호 구본창 박기호 변순철 양현모 등 사진가 12명이 찍은 유명인들의 패션사진, 영화포스터사진, 잡지표지 사진 200여 점을 전시한다. 타임지 표지에 실린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포스터에 실린 이병헌 이영애 송강호의 얼굴은 전문작가들의 작품이지만, 아무도 어려운 현대미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전시에는 관객이 더 쉽게 다가간다.
셋째, 인상파 같은 블록버스터 서양미술 전시뿐 아니라 대형 사진전시도 기업의 후원을 받게 돼 불이 붙었다. 디지털 사진의 보급으로 돈을 벌게 된 관련 기업들이 사진전시를 후원하는 것이다. ‘마틴 파 회고전’의 경우 HP가 주최했다. 디지털카메라와 잉크젯프린터 등 최신 IT(정보기술) 장비를 적극 활용하는 작가인 마틴 파는 기자회견장에서 후원사에 감사 뜻을 전하며 “이번 전시에 나오는 작품을 HP잉크젯프린터로 인쇄했으며 앞으로도 HP로 인쇄할 것이다”라고 말해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 그림같은 작품 만드는 기술
넷째, 사진이 다양하고 복잡한 기법을 쓰면서 재현과 기록의 매체로서뿐만 아니라 그림 같은 작품으로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성곡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윌리엄 웨그먼은 사진을 인화할 때 수채화 물감과 붓으로 수작업을 더하는 ‘검 바이크로메이트(Gum Bichromate)’ 인화방식으로 회화 같은 사진을 만든다.
성곡미술관 신정아 학예실장은 “스캐너를 사용하고 스냅 사진을 콜라주로 만드는 등 현대사진가들은 이제 회화작가 이상으로 제작과정을 다양하게 써서 관객층을 넓혔다”고 말했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제리 율스만과 매기 테일러는 필름 여러 장을 인화지 한 장에 이어 붙이는 수작업 등으로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 회화를 연상하게 하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다섯째, 시장의 역할도 배제할 수 없다. 현대사진작가들은 대부분 한 필름에서 찍어 낼 수 있는 에디션(인화된 작품)의 수를 5장 안팎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사진이라고 해서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수진 연세대학교 연구교수(사진심리학)는 “회화보다 가격은 저렴하면서 희소성도 있기 때문에 사진 컬렉터가 많아졌고 이는 사진 관객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